지난 2012년, '사디즘'으로 유명한 마르키 드 사드의 『소돔의 120일』이 유해간행물로 판정받아 한바탕 논란이 됐었다. 책은 재심의 끝에 현재 '19금' 소설로 판매중이다.
이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출판물에 대한 금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역사를 거슬러 보면, 금지의 역사는 인간의 기록의 역사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금지하는 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감추려 하는 것인가?
책 『금서의 역사』는 역사 속 금지된 책에 관한 거의 모든 에피소드를 쉴 새 없이 풀어놓는다. 책을 금지하는 것이 생각을 금지하는 것이라 여긴 독재자들, 정부 세력가들의 금지에 대한 열망, 그에 대항한 작가들의 고단한 투쟁 등이 생생하게 녹아 있다.
책은 먼저 가장 강력한 금지인 '자기검열'로 물꼬를 튼다. 애인이 죽자 사랑의 시를 무덤에 함께 묻어 버린 단테 가브리엘, 냉혹한 평에 마음이 상해 장롱 깊숙히 저작을 넣어둔 채 눈을 감은 마르셀 프루스트, 위대한 경력을 위해 이전 작품들의 존재를 부정한 마거릿 미첼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자살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금서목록에 올랐다. 하지만 이 책은 마치 베르테르의 편지를 실제로 받는 사람이 돼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엄청난 매력으로 금지를 뛰어 넘어 최고의 독일 소설로 자리매김한다.
이 밖에 실제 인물을 교묘하게 소설 속 인물로 등장시켜 사생활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금지된 클라우스 만의 『메피스토』, 막심 빌러의 『에즈라』, 주인공이 불륜을 저지른 후 예전보다 더 아름다워졌다고 묘사했다는 이유로 금지된 『보바리 부인』, 열여섯 살의 소년인 주인공이 우연히 만난 창녀에게 동정을 잃었다는 묘사가 문제가 된 『호밀밭의 파수꾼』, 그리고 동서양을 불문하고 신성모독을 이유로 금지된 수많은 작품들까지 금서의 배경과 원인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금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은 금서의 역사 뿐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인간의 폭넓은 역사, 특히 금지에 대항한 민중들의 이야기도 풍성하게 담아내 다양한 읽을 거리를 제공한다.
■ 금서의 역사
베르너 풀트 지음 | 송소민 옮김 | 시공사 펴냄 | 408쪽 |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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