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vs 영화] 소설도 영화도 야만의 '도가니', 하지만 모든 것은 현실①
[소설 vs 영화] 소설도 영화도 야만의 '도가니', 하지만 모든 것은 현실①
  • 윤빛나
  • 승인 2011.09.2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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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란의 '도가니'를 똑바로 응시하라
▲ 영화 <도가니> 스틸컷     © 독서신문

 
 
[독서신문 = 윤빛나 기자] 자그마한 오른손을 약간 구부려 왼뺨에 갖다 댄다. '수치스럽다'는 뜻의 수화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아이들은 어울리지 않는 법정이라는 장소에 서서 자신이 당했던 끔찍한 상황을 열심히 손짓으로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가해자도 제값을 치르지 않은 채 풀려났고, 억울했던 그들의 밀가루 시위와 계란 시위는 '장애아들의 철없는 폭력'으로 둔갑돼 언론에 보도됐다.

'(가해자들이)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순간 청각 장애인들의 울부짖음이 법정을 울렸다'는 기사 한 줄로 인해 쓰던 작품을 접고, 버려진 장애인들의 인권을 주워다 꼭 얘기하고 말겠다는 다짐을 한 공지영 작가. 그렇게 탄생한 작품 『도가니』는 다음에 연재될 당시 누적 조회수가 1,100만을 넘을 정도로 화제가 됐었고, 책으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며 인화학교 사건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켰다.

군복무 당시 이 소설을 접한 배우 공유는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무조건 하겠다"라며 출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고, 이 의지는 소속사의 도움으로 실현될 수 있었다. 출연 자체로도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아역배우는 부모의 사전 허락과 촬영 동행, '지금 어떤 장면을 찍고 있는가'에 대한 이해를 필수화 했으며, 일부러 촬영장 분위기를 밝게 유지해 가며 조심스럽게 촬영했다.

'추후에 일어날 우리 사회의 어두운 죄악에 대비책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영화 <도가니>는 개봉 일주일도 안 돼서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모두의 예상을 깨고 순항중이다.

책의 저자이자 각종 행사에 참가하며 영화 홍보에도 앞장서고 있는 공지영 작가는 "인화학교 사건을 책에 그대로 담으면 소설이 너무 야만적일 것 같아 수위를 반으로 낮췄는데, 영화 감독님은 소설의 수위를 또 반으로 낮췄다"며 "실제 사건은 영화보다 4배나 광범위하고 잔인하고 야만적"이라는 말 한 마디로 해당 사건의 끔찍함을 짐작케 했다.
 
 

▲ 인터파크 <도가니> 특별 시사회에 참석해 '관객과의 대화' 중인 공지영 작가     ©인터파크도서

 

실화가 활자로, 활자가 영상으로… 무엇이 변했나
 
영화 <도가니>는 소설의 '화가 나지만, 결국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무력한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 극적인 요소를 잔뜩 첨가한다거나, 가상의 인물을 창조해 내지는 않았다. 소설 속에서 오가는 대화들도 거의 그대로 살렸다.

안개가 걷혔지만 거리는 아직도 뿌연 빛이었다. 여러번 눈을 떠도 또 하나의 눈꺼풀을 더 떠야 할 것 같이 거리는 불투명했다. 여귀의 머리칼 같은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이 안개를 걷어줄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그 무진의 안개였다. (본문 131쪽)

이처럼 '안개'는 소설의 지배적인 이미지다. 하지만 영상에서 안개를 과다 사용할 수는 없기에, 영화는 안개의 상징성을 음악이나 넋을 놓은 듯한 등장인물들의 표정 연기로 표현해 허무주의를 짙게 깔았다.

또한 소설이 영화로 옮겨가면서 사건을 파헤치는 기간제 교사 인호와 인권단체 간사 유진의 비중이 줄어들었다. 대신 아이들에게 무게감이 옮겨갔다. 딸의 비극적 운명에 엄마답게 분노하던 연두 엄마의 비중도 줄어들었다. 영화의 실질적인 주연은 아이들이고, 따라서 영화는 '사건 서술' 자체에 중점을 두고 흘러간다.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화학교 내의 거대한 공포를 맞닥뜨린 기간제 교사 '인호'에게 아주 약간의 적극성이 부여됐다는 점이다. 인호를 영웅화 시키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고, 영화가 너무 힘없어 보인다는 지적이 많아 부득이하게 수정됐다. 무기력한 국어교사에서 여전히 무기력하지만 그래도 '수화는 할 줄 아는' 미술교사로 변한 인호는 그 덕에 보다 쉽게 상처받은 아이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세상에 진실을 말한다.

이렇게 변한 영화 속 인호는 소설 속에서 유진 혼자 맞던 물대포를 같이 맞는다. 이 장면은 세찬 물줄기로 진실을 압박하는 광경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현실과 맞닿는다. 민수의 영정사진을 들고 "이 아이는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아이입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민수입니다"라는 말만 미친 듯이 반복하는 인호의 모습은 여운을 주기에 충분하다.
 
 
▲ 영화 <도가니> 스틸컷     ©독서신문

 
인호의 과거 트라우마도 삭제됐다. 소설에서 과거 교편을 잡았던 시절 만났던 소녀와 연인관계였던 인호는 후에 그 소녀가 자살했을 때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 과거가 수년의 시간이 흐른 뒤 법정에서 인호의 발목을 잡고, 결국 인호가 현실을 도피하는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영화 속의 인호는 트라우마를 벗고 원작보다 적극적인 서술자가 됐다.
 
성폭력을 당한 학생들을 보듬는 인권운동센터 간사인 여주인공 유진 또한 영화에서 설정이 살짝 변했다. 원작에서는 인호의 학교 선배지만, 영화에서는 인호와 처음 만나는, 어린 미혼의 여성으로 등장한다. 원작에서 유진은 대놓고 '예쁘지 않다'는 묘사가 등장하는 데다가, 아이까지 있는 억척스러운 애엄마지만, 영화에서는 배우 정유미를 만나면서 밝고 씩씩하면서도 귀여운 구석이 있는 캐릭터로 설정됐다.

또한 영화에서는 인호의 부인이 일찍 죽었다는 설정이 더해져 두 사람 사이에 아주 약간의 로맨스가 펼쳐질 가능성도 펼쳐진다. 아이들이 인호가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데 이어 유진이 '엄마였으면 좋겠다'라고 하자 유진이 "너네, 저 아저씨 애까지 있어! 난 아직 연애도 제대로 못해봤는데" 하면서 정색하는 영화 속 장면은 잔인함에 녹초가 된 관객들을 아주 살짝 이완시킨다. 이런 부분은 호흡을 조절할 수 있는 소설과는 달리, 관객의 감정선이 편집 템포에 맞춰질 수밖에 없는 영화의 장르적 특성상 꼭 필요한 장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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