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원시림의 화해
인간과 원시림의 화해
  • 조순옥
  • 승인 2009.10.26 14: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조순옥편집위원 = 지리산에 올랐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굽어보는 넓고 큰 품을 보고서야 비로소 지리산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장터목 산장에서 일박 후 해돋이 장관을 가슴에 담고 중산리 방향으로 하산을 재촉했다. 하산 길은 바위와 잔돌이 많았으며 하얗게 부서지며 흐르는 계곡물은 생기 넘치는 율동과 함께 섬진강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들려오는 폭포소리는 서편제 판소리 한 가락을 듣는 듯 가슴이 아려오기도 했다.

청학동에 도착하였다. 맑은 하늘과 함께 어우러진 대나무 숲은 또 다른 묘한 감정을 자아냈다. 주위를 둘러보니 초가는 보이지 않았으며 현대식 건축물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불로장생 신선들이 사는 곳으로 인간세상과는 격리된 도인들 세계이기 때문에 속객들의 발길을 쉽사리 용납하지 않는다던 청학동은 첨단 문명에 자리를 내주고 급속하게 변하고 있었다. 도인복 차림에 갓 쓰고 한 손엔 자동차 키, 한 손엔 핸드폰을 들고 도회지 삶과 같이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21세기 청학동, 도인복 차림에 갓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곳이 청학동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다음날 삼성궁을 찾았다. 삼성궁이란 환인, 환웅, 단군왕검 세 분을 모신 궁이라는 뜻으로 배달겨레의 성전이며, 수도장으로 신선도를 추구하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모여 일군 곳으로 삼성궁(三聖宮)이라고 부른다. 삼성궁 안으로 들어서니 정동 쪽으로 열린 골짜기 가운데 약 10만 평 땅에 무수한 돌탑이 눈길을 압도했다. 원추형 돌탑, 맷돌로만 쌓은 맷돌 탑, 단지로만 쌓은 단지탑 등이 완경사를 이룬 골짜기 여기저기에 푸른 하늘과 맞물려 솟아 있었다. 높이는 한 길 정도 되는 것에서 10m 가까운 것도 있었다. 배치와 조형미 등이 극치를 이루었다고 설치미술가들이 찬탄한다는 돌탑을 삼성궁 수행자들은  “이 탑들은 실은 탑이 아니라 이곳이 소도(蘇塗), 즉 신성지역임을 알리는 솟대”라고 설명한다.

민족 고유 성지 소도의 재현이자 움직이며 하는 참선인 이른바 ‘행선(行禪)’의 의미가 있는 솟대 쌓기는 거의 매일 끊이지 않으며 이들이 수행을 멈추지 않는 한 탑 쌓기 또한 계속될 것이므로 삼성궁의 탑이 얼마까지 늘어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라 한다. 다만 ‘안정되고 바르게 섬’을 의미하는 숫자인 3과 포괄적으로 많음을 의미하는 만(萬)이라는 단위가 합쳐진 수인 3만 개까지는 행선으로 탑 쌓기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삼성궁 수행자들의 말이다. 필자는 자연스레 그 수행의 목적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호랑이처럼 강인했던 우리 민족은 그간 너무 나약해져 있고 그러므로 가깝게는 우리의 전통 도맥인 신선도를 이루어 민족정기를 되살리는 일이고, 멀게는 이화세계(理化世界), 즉 세계를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교화하는 것이다”는 말이 실감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원형질을 잃어 가는 청학동 모습을 보면서 자연과 하나로 조화롭게 살아갔던 인간과 원시림의 화해를 생각해 보았다. 확인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현대문명화 돼가는 그 곳이 싫어서 더 깊숙이 들어간 도인들이 있다한다. 그들이 더 이상 들어 갈 곳이나 있는지 반문하면서 운무에 가려 신비한 모습으로 서 있는 장엄한 지리산을 뒤로하고 섬진강을 돌아 귀경길에 올랐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