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역사를 움직인 이사벨 여왕②
스페인의 역사를 움직인 이사벨 여왕②
  • 신금자
  • 승인 2009.09.2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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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금자[수필가·본지 편집위원]     ©독서신문
 
시샘 받는 집은 무너진다? 

이사벨 여왕은 어린시절부터 왕권다툼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예컨대 귀족들의 지나친 권력행사와 정치 간섭은 두고 볼 수 없었다. 이를 뿌리째 뽑아버리지 않는다면 나랏일과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귀족들의 권한을 대폭 축소한 중앙집권체제에다 왕권을 보다 강화해나갔다. 귀족, 혹은 봉건영주들의 반발을 우려해 그녀의 남편 아라곤의 페르디난도 왕의 군대를 카스티야에 주둔시켰다. 그 덕분에 이사벨은 거침없이 봉건영주들의 성을 뺏고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왕실의 토지와 화폐주조권, 조세징수권 등의 특권을 하나하나 회수할 수 있었다.

 내쳐 그들의 숙원사업인 ‘그라나다 정벌’을 핑계로 특수부대까지 창설했다. 수백 년 전부터 이 곳 통치자들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국가들을 몰아내고 가톨릭과 옛 땅을 거의 회복했지만 스페인의 남부 끄트머리로 쫓겨난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은 그 때가지도 건재했다.
 바야흐로 카스티야와 아라곤 두 왕국을 합쳐 보다 강력해진 이사벨 1세 여왕에게 절호의 기회가 왔다. 역대 제왕들이 못한 일이지만 그녀는 용기 백배로 충만했다. 나라 안의 이교도를 죄 몰아내고 이베리아 반도를 온전히 천주의 품안으로 인도하는 것과 동시에 통일 스페인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원대한 꿈을 위해 상비군과 경찰부대까지 확대하고 강력한 왕권국가로 빠르게 전환했던 것이다.

 이슬람의 알함브라 궁전은 아름답기도 했지만 알 수 없는 미로에다 최대 요새이기에 이사벨 1세 여왕의 비책은 우선 식량보급로 차단이었다. 궁전으로 개미 한 마리 들고나지 못하는 상태의 장기전이라면 백기를 들것이라 보았다. 그 침공은 주효했다. 장장 8개월에 걸친 굶주림의 공포로 이슬람 최후의 나스르 왕조 보아브딜 왕은 이사벨 여왕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 때 이사벨은 그들의 종교와 성전을 그대로 보전케 해준다했으나 그것은 항복을 받기 위한 허울 좋은 약속이었다. 결국 이슬람 왕은 모로코로 내쫓기고 수많은 이교도들이 소이 종교재판으로 성에 갇히거나 처형되었다.
 
 
이사벨 여왕과 콜럼버스

그녀는 세고비아 성 대관식에서 백성들의 안위와 더 나은 삶을 열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왕은 늘 동분서주했다. 임신 중에도 결코 쉬지 않았다. 황폐한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지방통치순회를 일삼다 다섯 자녀를 궁전이 아닌 지방 곳곳에서 출산했을 정도다.
그 뿐인가. 이사벨 여왕은 참으로 담대했다. 카스피야와 아라곤, 그리고 그라나다까지 전국토를 회복하자 신대륙에 대한 모험을 시작하였다. 모두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믿지 못하던 때에 스페인은 그라나다와의 오랜 전쟁으로 인한 재정난마저 심각했던 터라 신하들의 만류가 극심했다. 그렇지만 이사벨 여왕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탐험에 대한 뜻을 경청하고 수용했다.
콜럼버스가 지동설을 믿고 세 척의 배만 준비된다면 대서양의 서쪽으로 나아가 인도에서 황금을 찾아 예루살렘을 수복하겠다는 말을 하고 다녔을 때 이웃나라 왕들은 이를 거절하며 정신병자 취급했지만 이사벨 여왕이 나서서 인도와 아메리카 탐험에 대한 투자를 했다. 이런 그녀의 막대한 재정지원이 포르투갈과 쌍벽을 이룬 에스파냐의 대항해시대를 열었고 라틴 아메리카 탄생과 함께 세계에 군림하는 제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인디언들에겐 불행한 일이었을지 모르나 그녀는 세계사에 다시 한번 입지전적인 여왕으로 등극한 셈이다.
 
알함브라 궁전을 사랑하다

그녀의 유언장이 참 근사하다. ‘수의는 수수하게 하되 그 남은 비용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교회에 기부토록 하라’ 했다. 특히 자신의 시신을 알함브라 궁전의 발길 뜸한 곳에 묻어줄 것과 오직 작은 묘석 하나만 남겨달라고 썼다. 그래서 그녀의 무덤은 알함브라 궁전 교회 지하실에 페르디난도 왕과 나란히 묻혀 있다. 대신 온통 아라비아 문양이 가득한 궁전의 뒤꼍에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칠 정도의 작은 묘비 하나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쓸쓸히 새겨져 있다.
 
그랬다. 그녀는 어떤 식으로든 이슬람 그들에게 속죄가 필요했으리라. 이교도라면 무조건 종교재판과 처형을 일삼았던 무시무시한 통치자였다는 회한이 마지막 가는 그녀를 외롭게 했을 것이다. 최소한 그녀가 알함브라 궁전을 탐하기는 했지만 이 궁전을 정복한 후 뜯어고치는 등의 일을 일체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아라베스크 양식의 이 아름다운 궁전을 있는 그대로 사랑했으리라. 어디로도 옮겨지길 바라지 않았던 무한정의 애착이 죽어서까지 이어진 걸 보면 말이다. 
 
이슬람의 무어인이 북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상륙한 지 어언 800년! 어느 왕도 건드리지 못했던 이슬람의 마지막 보루 ‘알함브라 궁전’을 함락시킨 이사벨 1세 여왕, 그 피비린내 나는 가톨릭과 이슬람의 종교전쟁을 고스란히 목격한 알함브라 궁전은 여전히 말이 없다. 다만 태생적으로 이슬람의 영광을 지키지도, 세인들과 어울리지도 못한 알함브라 궁전 나름대로의 회한이 오늘날 사람들을 불러 이리 허물없이 대하고 더러 혼을 빼놓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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