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친정엄마‧말아톤’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친정엄마‧말아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8.02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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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클리셰’(cliché)는 예술 비평 용어로 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생각 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특히 영화에서 클리셰는 입체적이지 못하고 평면화된 캐릭터, 지나치게 단순하고 일반화된 내러티브, 고착화된 카메라의 앵글과 움직임 등을 지적할 때 사용합니다. 다시 말해 클리셰란 영화 문법의 보편적 규칙 혹은 일정한 장르의 규범(공식, 관습, 도상 등)이라고 칭하기엔 그 만듦새 자체가 너무 뻔하고 상투적인 것을 꼬집을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민규동 감독,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스틸컷

특히 한국영화가 어머니를 묘사할 때 클리셰는 그야말로 ‘난무’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개의 어머니는 언제나 남편과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무런 조건 없이 내어줍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엔 불의의 사고나 불치병에 걸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죠. 민규동 감독의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2011)의 어머니 캐릭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무심한 남편과 철없는 자식들, 거기에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까지 뒷바라지해야 하는 기구한 운명의 ‘김인희’(배종옥)는 ‘고통 받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대로 체현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아내이자 엄마, 며느리로서 정작 ‘나’가 없는 인희의 고달픈 인생은 그 자체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유성엽 감독, 영화 <친정엄마> 스틸컷

유성엽 감독의 영화 <친정엄마>(2010)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딸과 그런 딸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이미지는 지나치게 작위적이며 동시에 전형적입니다. 특히 이런 식으로 캐릭터를 학대하면서 얻어낸 눈물은 쉽게 말라버립니다. 관객의 눈물샘을 억지로 자극해서 얻은 건조하면서도 차가운 눈물이기 때문입니다.

정윤철 감독, 영화 <말아톤> 스틸컷

자폐증에 걸린 아들마저 훌륭한 마라토너로 성장시켜야 하는, 가혹한 운명의 어머니를 그리고 있는 정윤철 감독의 <말아톤>(2005)은 어떤가요? 왜 이런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는 꼭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맡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건 우리가 모성신화에 지나친 기대와 환상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클리셰를 조금씩 비튼 영화들도 있습니다. 바로 방은진 감독의 <오로라공주>(2005),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2016), 이언희 감독의 <미씽: 사라진 여자>(2016) 등의 영화들이 그렇습니다. 위 영화들은 모두 희생하는 모성이 아닌 ‘광기 어린’ 모성을 장르적으로 녹여내며 서사에 일정한 재미와 구체성을 획득합니다.

어머니에 관한 캐릭터 설정에 주안점을 맞춰 설명했지만, 클리셰는 서두의 언급처럼 이야기 구조나 카메라 문법 등 영화 곳곳에서 숱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불치병이나 교통사고, 출생의 비밀, 기억 상실 등의 무분별한 사용은 서사를 망치는 지름길 중 하나입니다. 감정적으로 격해진 인물을 꼭 클로즈업으로 담고, 예술영화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왠지 롱쇼트와 롱테이크를 사용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책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 : 재미있는 영화 클리셰 사전』의 저자 듀나는 “그렇다고 해서 클리셰가 쓸모없다는 것은 아니다. 진부함에는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많은 장르영화 관객들은 클리셰를 오히려 매력으로 받아들인다”며 “많은 뛰어난 장르 작가들에게도 클리셰는 매력적이다. 그들은 이 사랑스럽게 진부한 공식들을 멋대로 뜯어고치거나 아니면 극단적으로 충실하게 따라가며 즐긴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책에서 ‘고개 돌리기’ ‘그래도 개는 산다’ ‘등에 꽂힌 칼’ ‘발표회 결석’ ‘분명히 저기 있었는데!’ ‘수다스러운 죽음’ ‘여행지 로맨스’ ‘잘못 엿듣기’ 등 키워드만으로도 대충 어떤 내용인지 짐작이 가는 클리셰들을 흥미롭게 짚고 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클리셰는 기본적으로 관객들이 익숙하게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창조적으로 비틀거나 깨는 행위는 신선한 영화적 재미를 창출할 수 있는 요긴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재기 발랄한 감독들은 ‘다음 장면에서 이렇게 되겠군!’이라는 관객의 기대를 배신하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중요한 건 클리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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