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소설은 한 일가(一家)가 하와이에서 어머니 심시선의 10주기 제사를 드리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된다. 가부장제와는 거리가 먼 이 일가는 장녀의 의견을 스스럼없이 따라 하와이로 떠난다. 그런데 왜 이들은 하필 하와이에서 제사를 지내게 됐을까? 소설은 줄곧 이 미스터리 아닌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
소설은 매 장마다 맨 앞에 여성 예술가이자 인권 운동가였던 시선에 관한 글을 배치하고, 그 뒤로 일가가 하와이에서 제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는다. 그런데 이 제사는 흔히 상상하는 평범한 제사가 아니다. 일가는 심시선이 젊은 시절 일했던 하와이에서 심시선을 떠올릴 만한 무언가를 모아서 제사상에 풀어놓기로 한다.
일가는 시선을 추억할 만한 것을 찾는 동시에 시선이 20세기 여성으로서, 예술가로서 살아오며 겪었던 피해를 더듬는다. 그것은 시선에 대한 일가의 시선(視線)인데, 한국전쟁 때 국군과 경찰에 의해 가족이 학살당한 시선이 사진신부로 하와이로 떠나고, 독일 예술가 마티아스 마우어를 만나 겪는 고초들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 피해는 성차별, 그루밍, 가스라이팅 등이라고 할 수 있는 폭력으로 인식된다.
과거의 시선은 비록 자신에게 가해진 그 폭력들이 무엇인지 온전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그가 자주 그렸던 게처럼 단단하게 자신을 지켜낸다. 일가는 시선이 당한 폭력을 되새기며 시선의 그런 단단함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리고 그들 안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뜨겁게 변화하기 시작한다.
여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일가는 자신에게 가해진 비슷한 폭력들을 과거의 시선보다 더 명확하게 인식하며, 그 폭력에 용기 있게 맞선다. 소설은 이렇게 ‘시선으로부터’ 내려온 무언가가 확산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문학동네 펴냄│340쪽│1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