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맞아야 저렇게 잘할까”... 아동 ‘체벌’과 ‘폭력’의 경계선
“얼마나 맞아야 저렇게 잘할까”... 아동 ‘체벌’과 ‘폭력’의 경계선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6.1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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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왕별희' 스틸컷.
청데이. 영화 '패왕별희' 스틸컷.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얼마나 연습했기에 저렇게 멋지게 하는 걸까. 맞기는 또 얼마나 맞았겠어.” - 영화 <패왕별희>(1993) 중

경극 견습생 청데이(장국영)는 매일같이 학대에 가까운 체벌을 당한다. 곱상한 외모로 여성 배역을 얻었으나, “나는 본래 계집아이로서 사내아이도 아닌 것이…”란 대사를 제대로 외우지 못했기 때문. 결국 데이는 동기 샤오라이즈와 함께 경극학원을 뛰쳐나오지만, 우연히 완벽에 가까운 경극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감탄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저 경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맞았을까.’ 그렇게 데이는 친구와 함께 경극학원으로 돌아가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스승의 구타. 이후 데이는 경극 배우로 큰 성공을 거두지만, 당시 구타의 기억과 구타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샤오라이즈의 죽음은 가슴 깊은 곳에 큰 상처로 남는다.

그간 체벌은 ‘사랑의 매’란 이름의 훈육법으로 여겨져 왔다. 본능적이고 미성숙한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교육법으로 여겨져 온 것이 사실. 수치심 등 심리적 체벌도 훈육법의 일종으로 자리매김해 왔는데, 과거 바지나 이불에 오줌을 싸면 옷을 벗겨 이웃집에서 소금을 얻어오게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하루빨리 오줌을 가리는 어른이 되라는 의도가 담긴 훈육...

다만 그런 훈육이 본래 의도처럼 아이들을 늘 좋은 사람으로 길러낸 것만은 아니다. 체벌과 폭력을 구분하지 못하는 부모의 경우 훈육이란 이름으로 아이에게 과도한 폭력을 휘두를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많은 아이가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었기 때문. 지난해 9월, 인천에서 손발이 묶인 다섯 살 아이가 계부에게 20시간 넘게 폭행당해 목숨을 잃었고, 지난 1월에는 경기도 여주에서 언어장애가 있는 아홉 살 아이가 계모에게 맞아 숨졌다. 지난달엔 충남 천안에서 계모에 의해 아홉 살 아이가 여행 가방에 7시간 가까이 갇혀있다가 생을 마감했고, 같은 달 29일에는 달궈진 프라이팬에 손을 지지는 등 학대를 견디지 못한 아홉 살 여자아이가 경찰에 구조돼 목숨을 구했다. 2001년부터 2018년까지 이런 식으로 세상을 떠난 아이는 279명(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아동 학대 혐의로 체포된 부모들은 한결같이 “‘학대’가 아닌 ‘체벌’이었다”며 아이에겐 허락되지 않았던 선처를 호소해 공분을 자아냈다.

계속되는 아동 학대 사건에 법무부는 부모의 징계와 체벌을 금지하는 법안 마련에 착수했다. 현행법상 부모에게는 아이를 보호하고 교양할 의무와 함께 ‘징계할 권리’가 존재하는데, 이런 권한을 제한하는 한편,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의 현장 조사에 불응할 경우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고, 현장 조사를 방해할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간 자녀 살해에는 적용하지 않았던 직계존속 가중 처벌(보통 살인의 징역 5년보다 무거운 7년) 조항도 적용할 방침이다.

‘학대는 피해야 하지만 교육적 체벌까지 금지하는 건 과도한 처사다’라는 반발이 없지 않지만, 그 취지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최근 아동 학대와 그로 인한 사망 건수가 늘어난 것도 영향을 끼치는 듯한 모습인데, 실제로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18 전국 아동학대 현황」에 따르면 아동 학대 건수는 2015년 1만1,715건, 2016년 1만8,700건, 2017년 2만2,367건, 2018년 2만4,604건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2018년 아동 학대로 사망한 아이는 스물여덟명이다.

물론 체벌의 효과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체벌이 무서워 순종하고, 그에 따라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한다. 김선규(34·남)씨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스파르타 학원에서 공부했다. 체벌이 일상인 학원이었는데, 시험을 봐서 틀린 개수대로 죽도(竹刀) 혹은 검은색 절연테이프로 감은 쇠파이프로 허벅지를 맞았다. 학원에는 나를 비롯해 군인 자녀들이 많았는데, 맞기 싫어 공부했고 그 덕에 원하던 대학에 갔지만, 그 시절의 기억은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는다”고 토로했다.

기욤 뮈소는 소설 『파리의 아파트』에서 (어린 시절 아동 학대를 당한) 주인공 아드리아노에 대해 “폭력 행위에 장기간 노출돼 있던 사람의 트라우마는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저절로 해소되기는 어렵습니다. 당한 만큼 자기 자신 혹은 다른 사람에게 되돌려주게 되죠”라고 말한다. 부모에게 당한 폭력의 경험은 또 다른 피해자를 찾아 흘러간다는 것. 소설가 나카와키 하쓰에의 소설 『너는 착한 아이야』 속 미즈키가 이웃들과 있을 때는 상냥한 여자지만, 딸 아야네와 있을 때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폭군으로 돌변하는 것도 그런 이유. 책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에서 김효원 울산대 교수는 말한다. “가족 내 아동을 향한 폭력은 가족 내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를 풀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과 대상을 찾는 것이다. 특히 폭력의 대물림은 어릴 때부터 가정 내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는 것을 보고 배운 결과”라고. 체벌과 폭력의 구분은 아이의 인식이다. 아이가 체벌을 ‘사랑의 매’가 아닌 폭력으로 인지할 여지가 있다면 이후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멈추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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