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개월 딸 아이가 (가상의 인물에게) 성폭행을 당했어요”
“25개월 딸 아이가 (가상의 인물에게) 성폭행을 당했어요”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5.22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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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저는 생후 25개월, 6개월 된 두 딸을 키우며 평택에 거주하는 한 아이의 엄마입니다” “(지난) 3월 17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모의 아들인 초등학생 5학년 ***학생이 저희 집에 놀러 왔습니다. 평소처럼 저희 딸이랑 잘 놀아주고 하룻밤 자고 갔습니다” “다음날 (딸 아이) 기저귀를 갈아주려는데 저희 아이가 ‘아포 아포’해서 어디가 아포(했더니) 아이가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생식기. 자세히 보니 빨개져서 부어있는 걸 확인했는데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전) ***아이의 (핸드)폰에서 봤던 것(성인 광고)이 머리에 떠올라 힘들었습니다” “(가해자 측은) ‘(당신) 아이가 아빠 없이 혼자 자라 (문제가 있다) 내 아들은 잘못이 없다, 네 딸이 문제다’라고 했다.”

지난 3월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 지난달 19일 청원 마감 당시 53만3,000여명의 동의를 받은 청원이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교류가 잦았던 이웃집 초등학생이 25개월 된 딸을 성폭행했다는 내용이었는데, 청원인은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피해 상황을 길고 자세하게 서술했다. “내 아들은 잘못이 없다”는 가해자 측의 문자 내용을 시간순으로 나열하기도 했는데, 그 구체적 진술이 많은 이들의 공분을 자아내면서 청와대 답변 기준(20만명 동의)을 크게 상회하는 동의자를 모았다. 큰 공분을 자아낸 사건인 만큼 청와대 입장표명은 큰 주목을 받았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해당 청원 내용이 모두 허위사실이었던 것. 청와대 측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가해 아동이 실존하지 않고, 피해 아동의 병원 진료 내역이 사실과 다른 점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25개월 된 딸이 있다는 것 빼고는 모든 폭로가 거짓말이었다.

‘글에 신뢰를 부여하려면 최대한 구체적으로 쓰라’는 글쓰기 기본 원칙에 따라 허구 사실을 구체적이고 자극적으로 묘사하면서 가상의 가해자를 향했던 대중의 분노는 이제 방향을 틀어 청원인에게 날을 세우는 상황. 온라인상에서는 “실제 자기 딸이 25개월인데 저런 끔찍한 소설을 쓴 건가?” “국민을 우롱한 저분 때문에 다시 청원해야 할 듯”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저 여자가...” 등의 부정적 여론이 크게 일어났고, 일부는 “해당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해당 청원을 올린 30대 여성은 위계에 따른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상황이다.

이뿐 아니다. 이날 청와대 답변을 통해서 7살 아이가 어린이집 원장에게 3년간 성폭행 당했다는 내용의 국민청원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청원인은 자신의 아이가 “엄마 장 원장님이 내 OO를 먹었고 장 원장님 OO도 내 입에 먹게 했어” “비밀을 안 지킬 시에는 죽여버린다고 하면서 내 온몸을 때리고 꼬집고...”라고 주장해 27만여명의 동의를 얻었지만 청와대 측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사실확인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부 아동학대 혐의는 인정되지만, 성폭행 의혹은 무혐의로 판결난 것. 이에 일각에서는 아이가 학대당한 데 대한 앙갚음 차원에서 성폭행 의혹을 제기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 앞서 해당 원장은 ‘무고 및 명예훼손 고발을 검토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 성폭행은 물리적 고통을 가하는 일반 폭행 수준을 넘어, 피해자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히고, 그로 인해 (심한 경우) ‘정신 붕괴’(정신 질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리적 살인 행위로 간주된다. 그만큼 성폭행범은 패륜 범죄자(교도소 내에서 은어로 ‘물총 강도’라 호칭됨)로 여겨져 교도소 내 범죄자들 사이에서도 ‘질 나쁜 죄인’ 취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영국의 경우 교도소 내에서 (아동)성폭행범들이 집단 폭행당하는 사건이 있었고, 그로 인해 (아동)성폭행범을 다른 재소자로부터 보호하는 내부 규정이 마련된 것으로 알려진다.

범죄자들 사이에서조차 ‘나쁜 범죄’로 여겨지는 성폭행. 이런 이유에서 성폭행범 낙인은 누군가의 사회적 위치를 철저하게 파괴할 수 있고, 실제로 악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안셀름 그륀 신부는 책 『참 소중한 나』에서 “성폭행에 무관한 사람들에게까지 죄를 뒤집어씌우고 책망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비난에 대해 누구도 완벽하게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고 당한 사람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고, 비난 자체가 벌써 단죄를 가하는 행위가 된다”고 말한다.

또한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성(性)범죄 의혹은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앞서 25개월 된 딸아이가 성폭행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의 범행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관종’(관심 종자)으로 추정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대중의 관심 외에 거짓말로 얻을 이득이 없기 때문. 이충헌 정신과전문의는 책 『의학의 비밀』에서 “히스테리컬한 사람들은 자신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과장은 심한 경우 거짓말로 이어진다. 이들은 사기꾼처럼 상대방을 속여 부당한 이득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히스테리성 거짓말은 주변을 깜짝 놀라게 해 주목과 관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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