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 없이 BTS 얼굴로 책 내고, 콘텐츠 만들어도 OK?
허락 없이 BTS 얼굴로 책 내고, 콘텐츠 만들어도 OK?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5.1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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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사진=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도서 홍보를 대행하는 C업체는 자사 SNS 유입량을 늘리기 위해 오랜 기간 유명인들의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해 콘텐츠를 제작해 왔다. 콘텐츠에 연예인 사진 등을 넣어 클릭을 유도했고, 이렇게 얻은 조회 수를 이용해 자사 SNS를 ‘접속자가 많은 플랫폼’으로 홍보하며 출판사들에게 도서 광고를 제안했다. 본래 기업 영리활동과 관계된 콘텐츠의 경우 원칙대로라면 당사자(유명인)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고 일각의 문제 제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존 행태를 고수했다. 다만 마땅한 처벌법규가 마련되지 않아 C업체의 행태를 제재하기는 어려운 상황. C업체의 행태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처벌은 요원하기만 하다.

위와 같은 상황에 대한 처벌 방법과 관련해 대부분의 사람은 가장 먼저 ‘초상권 침해’를 떠올리기 쉽다. 초상권은 신원이 드러날 수 있는 얼굴과 신체 등이 담긴 촬영물이 무단 유포되거나 광고 등 영리적 목적에 사용되지 않도록 보호받을 권리로, 이를 어길 시 처벌이 가능하지만, 이미 얼굴이 많이 알려진 유명인의 경우 보호받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초상권은 일종의 ‘인격권’으로, 권리 침해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았는지가 처벌의 주요한 근거가 되는데 이미 얼굴이 많이 알려진 유명인의 경우 부정적으로 다뤄진 상황이 아니라면 정신적 손해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설령 인정된다 해도 위자료가 적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출판계에서는 유명인의 사진을 일부 가공해 책을 출간하는 경우가 공공연하게 일어난다. 최근 출판가에서 큰 주목을 받은 B출판사가 내놓은 도서 『페이커랑 게임하자!』가 대표적인 사례. 해당 출판사가 선보인 도서에는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프로게이머 이상혁 선수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고, 소비자는 해당 도서를 이상혁 선수와 계약을 맺은 출판사가 출간한 것이라고 인식하기 쉬운 상황이었지만, 사실 이 선수나 소속팀(SK T1)은 해당 도서의 출간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뒤늦게 문제 제기가 이뤄지자 출판사 측은 “(책에) 활용한 그림은 모두 손으로 그린 그림”이라며 “어떤 종류의 판권이나 초상권 등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답변을 내놓아 논란을 키웠다. 이 선수의 초상을 그려 출판하긴 했지만, 출판사 측에서 직접 그린 것이라 당사자의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

그렇다면 이런 행위를 처벌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법률 전문가들은 “초상권보다는 퍼블리시티권 개념을 적용해 (명목상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상혁 선수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격권’ 중심의 초상권보다는 ‘재산권’ 중심의 퍼블리시티권을 적용하면 명목상으로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는 것. 정상적으로 계약을 체결했을 경우 기대할 수 있는 금액을 손해로 간주해 배상액을 청구하겠다는 것인데, 어디까지나 개념일 뿐 현재 국내에서는 퍼블리시티권 개념이 입법화되지 않아 실제로 적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퍼블리시티권은 일부 선진국을 제외한 다수 국가에서 아직 입법화되지 않았는데, 이런 상황은 K-POP 가수들의 해외 진출에도 일부 악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한류 가수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과거 캄보디아에서는 노래 ‘링딩동’으로 큰 인기를 얻은 그룹 ‘샤이니’의 그룹명과 곡명, 안무를 그대로 차용해 활동하는 가수가 등장했지만 국내와 마찬가지로 적용 가능한 법적 근거가 미비해 대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세계적인 가수로 성장한 ‘방탄소년단’(BTS)도 피해를 보기는 마찬가지. 그간 적잖은 업체가 소속사 빅히트와 협의 없이 무단으로 BTS의 짝퉁 화보집을 국내외에 유통해 부정 이득을 취해왔다. 하지만 퍼블리시티권 개념조차 인정되지 않는 국내 상황에서 빅히트는 해당 업체들을 대상으로 제대로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적잖은 피해를 겪어왔다.

다만 최근 BTS와 대형 로펌이 힘을 합쳐 새로운 방안을 마련하면서 피해를 막을 수 있게 됐는데, BTS와 로펌이 내놓은 묘수는 ‘부정경쟁방지법’이다. 해당 법률은 타인의 투자와 노력으로 이뤄진 성과 등을 공정한 경쟁 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짝퉁 화보집 제작을 부정경쟁으로 간주했다. 실제로 최근 대법원은 BTS의 명성과 신용, 고객흡인력을 빅히트의 성과로 판단해 업체들의 짝퉁 화보집 제작·유통을 금지했다. 늦게나마 권리를 되찾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아직 퍼블리시티권이 명문화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부정경쟁방지법을 개정해 퍼블리시티권을 분명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김웅 전 검사는 책 『검사내전』에서 “치타는 완벽한 위장술과 발자국 소리 하나 내지 않는 유연함으로 톰슨가젤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중략) 그렇게 최대한 접근한 후 방심한 틈을 타 순식간에 달려들어 잡아먹는다. 그러나 이렇게 치명적인 기술과 조건을 지녔음에도 치타의 사냥 성공률은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그건 아마도 생사가 걸린 싸움이기 때문인 것 같다. 치타는 그 경주에서 지더라도 또 뛸 수 있지만 가젤은 그렇지 않다. 먹기 위해 뛰는 것과 죽지 않기 위해 뛰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사기꾼을 잡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기꾼은 죽지 않기 위해 뛴다”고 말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의 맹점을 파고들며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이들. 죽지 않기 위해 뛰는 그들의 탐욕을 잠재우기 위해 현실을 반영한 실효성 있는 법안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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