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클럽 방문자가 숨어버린 진짜 이유는…
이태원클럽 방문자가 숨어버린 진짜 이유는…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5.14 08:53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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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2020 제 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수록작 「우리(畜舍)의 환대」는 가족을 떠나 호주로 간 성소수자 영재를 방문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그린다. 영재가 대학 재학 중 호주로 떠나 그곳에서 3년 동안 돌아오지 않는 것도 모자라 웬만한 사람들은 다 받아주는 호주 대학에 편입학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만난 영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인다. 동양인, 흑인, 성소수자, 동물과 자연 모두가 편견 없이 어울려 사는 호주의 빛나는 환대. 이러한 환대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눈을 뜨기 힘들어하며, 결국에는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그 환대 위로 과거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외아들 영재가 성소수자 섹스 동영상을 시청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이 흐른다. 아버지가 폭행을 시작하기 전에 한 말은 “더러운 놈”이었다. 소설은 이렇게 흔히 우리가 축사(畜舍)로도 부르는 ‘우리’와 가까운 이들을 이르는 ‘우리’를 상징적으로 대비한다. 우리(畜舍)는 어디이고, 우리는 무엇일까. 

박상영 작가의 베스트셀러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중 「우럭 한점 우주의 맛」에서 주인공은 가로등 불빛이 스포트라이트처럼 내리쬐는 그네에서 동성과 키스하는 장면을 엄마에게 들킨다. 다음 날 엄마로 인해 정신병원에 입원한 주인공은 혈액검사를 포함한 각종 검사를 받으며 매 끼니마다 여덟 알이 넘는 약을 복용한다.

보름 동안의 여러 검사와 지속적인 상담 끝에 의사가 내린 결론은 주인공이 전쟁 피해자와 같은 강도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주인공이 16년 동안 엄마 인생의 대리물로서 자신의 심리적 욕구를 억압하며 살아왔고, 정작 시급한 것은 엄마의 치료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치료를 거부하고 이렇게 말한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남부끄러운 일이니.”  

김병운 작가의 장편소설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는 성정체성을 숨기고 배우 활동을 하는 공상표(본명 강은성)를 중심으로 흐른다. 공상표는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과거 연인을 제외한 모두에게 철저히 숨기는데, 그것이 자신의 어머니를 실망케 하고 자신의 앞길을 망칠까 봐 두려워서다. 사회는 성소수자를 엄청난 변태 정도로만 인식하기 때문이다. 공상표는 급기야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존재를 혐오하게 된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이태원 클럽을 방문했던 5,500여명 중 2,000여명이 연락이 두절됐다.

“다 찾아내서 싹다 불태워 죽여야 한다” “뒤틀린 성적 취향을 가진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계기가 된 사건인 것 같다” “진짜 인간 같지 않은 것 때문에…” “동성애도 하나의 질병으로 치료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태원클럽 방문 2천명 ‘연락두절’…협조않으면 CCTV조사 대응(종합)”이라는 <연합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들. 이 중에는 백여명이 ‘좋아요’를 누른 댓글들도 있다. 

숨어버린 이들. 당연히 이들은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 검사를 받아야 할 테지만, 그런데 어쩐지 이들이 숨어버린 원인은 이들에게만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성소수자에 대한 우리(畜舍)의 혐오가 이들을 지레 겁먹게 하지는 않았을까. 호주로 떠나버린 영재처럼, 전쟁 피해자와 같은 강도의 트라우마를 겪으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야 하는 주인공처럼, 자신의 존재를 혐오하게 된 공상표처럼. 이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숨어버린 이들에게는, 공상표의 입을 빌려 용기를 전해야 할 것 같다. 소설 속 공상표는 헤어진 연인 김영우가 이태원 클럽 방화사건으로 인해 숨지자 돌연 커밍아웃을 감행한다. 성소수자들이 많은 클럽에 불을 지른 성소수자 방화범처럼, 그 역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사랑해야 할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을 헤치고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터뷰에서 공상표는 이렇게 말한다. “자꾸 쓰고 말해서 우리가 우리를 수치스러워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은 거라고, 결국 내가 문제고 내가 잘못됐고 나만 사라지면 된다고 결론짓는 일을 끝내고 싶은 거라고.” 또한 그는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렇더라도 스스로를 기만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나를 죽이면서까지 내가 원치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저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진실해야 한다는 걸 알아요. 저 자신에게는 물론, 제가 앞으로 연기할 인물들, 더 나아가 그걸 지켜볼 관객들에게도요”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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