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토록 신선한 미스터리는 어디서 온 걸까? 『칵테일, 러브, 좀비』
[리뷰] 이토록 신선한 미스터리는 어디서 온 걸까? 『칵테일, 러브, 좀비』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5.0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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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미스터리 장르와 참여 문학을 좋아한다면 이 단편집에 실린 네 편의 미스터리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야기들은 제각기 앙가주망적 요소를 담고 있는데 이 요소들이 우리가 아는 미스터리와 절묘하게 섞이며 전에 본 적 없는 신선함을 선사한다. 

소설 속 미스터리는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폭력을 드러내고, 그것을 통쾌하게 깨부수는 장치로 기능한다. 첫 번째 작품인 「초대」에 담긴 폭력은 정현으로 대표되는 남성의 가스라이팅(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이다. 정현은 교묘하게 채원을 평가하며 채원이 모르는 사이 자신이 원하는 틀에 채원을 끼워 맞춘다. 정현의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던 채원 앞에 등장한 얼굴 없는 여성 태주는 채원에게 기묘한 웃음을 던지며 채원을 피의 축제로 초대한다. 

「습지의 사랑」에는 무분별한 부동산 개발이라는 설정 위로 물귀신과 숲귀신의 사랑이 펼쳐진다. 물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물귀신과 숲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숲귀신은 계곡과 숲을 골프장으로 만들겠다는 인간의 욕심과 마주하며 무기력해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그러한 욕심으로 인해 둘의 사랑은 이뤄진다. 

“주는 술을 왜 다 마셔! 적당히 마시고 거절해야지.”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 너도 크면 알게 될 거야.”
표제작인 「칵테일, 러브, 좀비」는 국밥집에서 준 뱀술을 ‘어쩔 수 없이’ 받아 마시고 좀비가 돼버린 아빠에 대처하는 엄마와 딸 주연을 그린다. “생각해보면 아빠는 핑계를 대지 않은 적이 없다. 잘 알지도 못하는 주식으로 돈을 날렸을 때도, 일주일 만에 외출한 엄마를 보고 남들 앞에서 여편네 팔자 좋다고 비아냥거렸을 때도, 울면서 화내는 엄마에게 주연이 여행 가서 사 온 코끼리 목상을 던졌을 때도, 웬 여자의 전화번호를 친하지도 않은 큰 고모부 이름으로 저장해 놓은 걸 들켰을 때도.” 평생에 걸친 아빠의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가 결국 아빠를 좀비로 만들었다고 주연은 생각한다. 이는 남성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이어나간 가부장제의 폭력성에 대한 상징적인 비판이기도 하다.

마지막 단편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는 늦은 밤 홀로 길을 걷는 혼자 사는 여성이 느끼는 극도의 공포감과 가정폭력을 타임리프를 통해 그려낸다. 이 소설은 아주 정교하게 조각된 연속된 타임리프로 독자의 뒤통수를 여러 차례 때리는데, 이 과정에서 독자는 벗어날 수 없는 비극의 톱니바퀴 속에 끼여 속절없는 인물들을 보게 되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자문하게 된다.        

『칵테일, 러브, 좀비』
조예은 지음│안전가옥 펴냄│165쪽│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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