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당신과 나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리뷰] 당신과 나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4.20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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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지난해 일본 신인작가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이 작품은 인간성 변질과 타락의 가벼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보라색 치마를 입고 공원에 출몰해 크림빵을 먹는 여자 히노. 며칠씩 씻지 않은 것이 분명한 푸석푸석한 머리에 더러운 손톱, 마을 사람들이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은 이 여자와 친해지고 싶은 곤도는 히노를 스토킹한다. 어떻게 하면 그에게 말을 걸 수 있을까 연구하던 곤도는 급기야 직장을 구하기 위해 면접 자리를 전전하는 히노를 자신의 직장에 취업하게끔 유도한다. 

히노가 직장에 들어간 것을 발화점으로 소설에서 인간성의 변질과 타락은 너무나도 쉽게,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히노는 의외로 회사 생활에 완벽히 적응하고, 꾀죄죄했던 외모는 아름답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개선된다. 그러나 히노의 변화는 초고속 승진에 그치지 않고 질적 저하를 맞이한다. 콧대가 높아진 히노는 일을 대충 하기 시작하더니, 뻔뻔스럽게도 유부남 소장과 불륜을 저지른다. 

변질하고 타락하는 것은 히노만이 아니다. 히노를 칭찬하며 추켜세웠던 ‘쿨’한 상사들은 히노가 그들을 무시하고 소장과 바람을 피우기 시작하자 단체로 히노를 왕따시킨다. 근거가 빈약한 논리로 히노를 도둑으로 매도하고, 히노의 행동에 이중잣대를 들이댄다. 히노의 우발적인 살인까지 덮어줄 만큼 히노를 사랑했던 곤도조차 히노가 떠나버리자 히노를 팔아 소장에게서 돈을 뜯어내고, 소장은 가족과 회사 사람들에게 히노가 자신을 스토킹한 것이라고 거짓말한다.       

소설은 상징적인 장치들을 사용해 이러한 변질과 타락을 강조한다. 가령 히노는 단거리 육상선수 출신이다. 짧은 시간 동안만 열심히 달리고 마는 단거리 육상과 히노의 빠른 변질은 닮았다. 또한 소설은 중반부에 히노가 공원에서 아이들과 신나게 노는 장면을 여러 번 보여주는데, 타락한 후로 히노는 더 이상 공원에 가지 않는다. 

마지막 장에서 타락하기 전 히노가 늘 앉던 공원 의자에 곤도가 크림빵을 가지고 앉는 장면, 그런 곤도의 어깨를 히노와 함께 놀던 아이들이 치는 장면은 곤도의 순수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장면은 곤도는 곧 히노이며, 곤도 역시 히노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쉽게 변질하고 빠르게 타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변질과 타락은 얼마나 가벼운가. 소설은 독자의 얼굴 역시 붉힌다.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이마무라 나쓰코 지음│홍은주 옮김│문학동네 펴냄│140쪽│12,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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