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이후에도 여전... '남성 시선’ 욕망하는 ‘일탈계’ 여성들
n번방 이후에도 여전... '남성 시선’ 욕망하는 ‘일탈계’ 여성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4.09 09: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다수의 성 착취 피해자를 낳은 ‘n번방’ 사건으로 ‘일탈계’ ‘섹계’ 등의 SNS 계정이 주목받는다. 해당 SNS 계정은 여성이 자신의 신체 일부를 촬영해 공개하는 온라인 창구로써 앞서 n번방 피해 여성 중 상당수가 이런 SNS를 운영하다 범죄 표적으로 지목되면서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피해 여성 74명 중 미성년자가 16명이었듯, 미성년자의 일탈계도 적지 않은데, 문제는 지금도 이런 미성년자의 일탈계가 별다른 연령 제한 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도덕적으로, 실정법상으로 제재돼야 마땅하지만,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또 다른 n번방 사건 발생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일탈계는 ‘성적 일탈 계정’을 뜻하는 말로, 보통 여성들이 자신의 성행위 장면이나 은밀한 신체 부위를 촬영해 올리면 남성들이 호응의 메시지를 전하는 구조로 이뤄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돈을 받고 촬영물을 판매하거나, 성매매로 이어지기 때문에 성매매 창구로 지적받아왔는데, 갓갓, 박사, 와치맨 등 성 착취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이런 점을 약점으로 잡아 일탈계를 운영하는 여성들을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박은 ‘음란물 유포 혐의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겁을 준 뒤 신체 사진 전송을 강요하고, 이를 빌미로 계속해서 음란 사진과 영상을 요구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일탈계 운영 사실이 주변에 공개될까 두려워한 여성들이 요구에 응하면 응할수록 성 착취 강도가 더욱 거세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비록 자신의 신체라 해도 성적인 촬영물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것은 불법이다. 특히 미성년자의 경우 자신의 신체를 찍어 올리는 건 아동 음란물을 제작한 것으로 해석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통법)은 물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에 저촉될 수 있다. 굳이 이런 실정법 위반 사안이 아니더라도 일탈계를 운영하는 대다수 여성은 자신의 신분노출을 두려워했는데, 이는 성 착취의 올가미로 작용했다. 그들은 왜 이런 위험한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일탈계에 빠지게 된 것일까?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돈과 자기만족. 일부는 일탈계를 성(性)을 팔아 돈을 버는 창구로 삼았다. 이는 미성년자도 예외가 아닌데, 이들은 음란 사진과 영상을 돈(문화상품권 포함)을 받고 판매하거나, 더 나아가 성적인 만남을 갖기도 했다. 돈 외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벗은 몸에 환호하는 남성들의 반응을 통해 낮아진 자존감의 일시적 회복을 꾀했다. 도덕적으로 옳지 않지만, 과도한 경쟁 혹은 불합리한 상황으로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는 쉽고 빠른 방법으로 성적 일탈을 선택한 것이다.

실제로 과거 일탈계를 운영했던 김미정(가명·20/여)씨는 “일탈계 운영자 중에는 학교/가정폭력이나 애정 결핍 등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 난 고등학교 때 지속적으로 가정/학교 폭력을 당해 심신이 미약해진 상태에서 내 벗은 몸을 SNS에 올렸고, 내 벗은 몸을 찬양하는 남성들의 칭찬으로 정서적 안정을 취했다. 다만 강압적인 성관계를 요구하고, 때로는 폭력까지 행사하는 남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어 그만뒀다”며 “이후 우울증 치료를 받고 상황이 호전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n번방 사건이 문제가 된 지금도 SNS상에서 일탈계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대다수 SNS에서 성인인증 없이 일탈계를 만들고, 볼 수 있는 상황인데, SNS 운영사나 여성가족부(아동‧청소년 보호와 성폭력 예방 주무 부처)는 상황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모양새다. 지금 당장 특정 검색어를 입력하면 수많은 일탈계가 검색되는 상황인데, 이와 관련해 여가부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사전모니터링 체계를 좀 더 강화할 계획”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전했고, 트위터 코리아는 “트위터는 아동 성적 착취를 담거나 홍보하는 계정을 즉시 영구적으로 정지한다. 지난해 1월부터 6월까지 24만4,188개의 계정이 규정 위반으로 정지됐다. 지난해 5월에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한국여성인권진흥원 내)에 삭제 요청 채널 권한을 부여해 보다 빠르고 효과적인 삭제 처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언뜻 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문제 있는 영상물은 여전히 노출되는 상황. 여가부는 지난 1일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특별지원단’을 꾸려 n번방 피해자 지원에 나섰지만, 사후 대처에 급급할 뿐 또 다른 n번방 발생을 막는 데는 발 벗고 나서지 않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김종현 작가는 책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끊기의 기술』(부크크)에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은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이는) 상대의 욕망에 부합되도록 행동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나의 가치를 높여서 결국 ‘나의 욕망’을 채우는 현상을 말한다”며 “칭찬받기 위해 받아쓰기 백점 맞으려 하는 아이들이나 ‘좋아요’ 수를 높이기 위해 SNS 상에 계속 사진을 업데이트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여성에 대한 성적대상화라는 왜곡된 현상을 오히려 ‘적극’ 수용하고, 성형수술을 통해서라도 외적인 아름다움을 여성의 최고 가치로 받아들이는 일부 여성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즉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욕망을 여성 스스로 욕망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한다.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는 일부 남성의 그릇된 욕망도 문제지만, 그에 따라 일탈계를 운영하며 남성들의 욕망을 욕망하는 여성들의 행태도 우려되는 상황. 그릇된 욕망을 바로잡는 노력과 더불어 그릇된 성적 욕구 표출의 장이 될 수 있는 일탈계에 대한 발 빠른 조처가 필요한 상황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