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불안의 온기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불안의 온기
  • 스미레
  • 승인 2020.03.24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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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입맛이 없어 보이던데 괜찮을까? 어제 그런 말은 괜히 했나?

글을 쓰는 지금도 뭔가가 불안하다. 내 안에는 불안의 불씨가 들었는지, 자동 시스템처럼 살짝만 버튼이 눌려도 따끈따끈한 새 불안이 지펴진다.

“대체 뭐가 문제야? 복세편살 몰라?” 그런 말에 억눌려 있던 나의 불안은 아이를 갖는 순간 봉인이 해제되고 화력을 높였다. 삽시간에 세를 늘리며, 육아기를 관통하는 지배적인 감정이 되어 버렸다. 불안해서 잡은 육아서로부터는 불안을 버리란 말만 들었다. 그거 아주 몹쓸 것이라고.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불안은 누를수록 요동했다. 색깔과 모양이 매일 달라졌고 온도는 점점 뜨거워졌다. 그 무렵 왕왕 찾아오던 ‘마음이 데인듯한’ 증상은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불을 억지로 밟아 끄라 말하고 싶진 않다. 나는 오히려 불안도 육아의 동력이 될 수 있음을 전하고 싶다.

불안하다는 것은 조심성이 많다는 뜻과도 같다. 적당한 불안은 위험을 지각하고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쩌면 불안 덕분에 아이도, 나도 지금껏 크게 다치거나 아픈 적 없이 잘 지내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아프지 않으면 엄마가 편하다. 나는 이 편안함이야말로 불안을 담보로 얻은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자전거를 탈 때 꼭 헬멧을 씌운다. 귀찮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그리한다. 외출 후엔 꼭 손을 씻게 일러줬고 최대한 건강한 재료로 깨끗하고 안전하게 식사를 준비한다. 집 안에서도 아이가 다칠만한 것들은 치워두거나 그에 대한 주의사항을 정확히 알려주었다. 특히 아이가 기계나 도구를 다룰 때면 몇 번이고 점검 후 어른 곁에서만 만지게 했다. 종일 나가 노는 아이를 볼 때면 ‘쟤 까막눈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들었는데, 이것은 꾸준히 책을 읽어준 원동력이 되었다. 

불안은 대개 낮은 자신감에 기인한다던데, 자신감이 낮은 대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자신이 없을 때 구체적인 해결책과 대비책도 갖게 되는 법이다.

가르치는 데 자신이 없다면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하면 되지 않을까? 놀이에 자신이 없어도 놀이책과 놀이 키트는 살 수 있다. 요리에 자신이 없다면 괜찮은 반찬 가게를 알아두면 그만이다.

이렇게 작은 실행을 하나씩 옮기다 보니 걱정 보따리가 조금씩 작아졌다. 게다가 불안에도 총량이 있는지, 아니면 거기에 드는 에너지에 총량이 있는 건지, 불안도 계속 하다 보니 지루해지는 것이었다. 그 대부분이 기우란 것도 차츰 알게 됐다. 불안한 날에도 여전히 아이는 예쁘고 햇살은 눈부시니, 그게 또 새삼 좋았다.

사실 부모의 불안은 아이의 성장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육아의 한 과정이다. 부모도 모든 것이 처음인데 불안할 수밖에. 게다가 나를 뺀 온 국민이 육아 전문가인 것 같고, 매체와 기업들은 작정하고 우리의 불안을 자극하니, 불안이 깊어지는 게 당연하다.

끝내 궁금한 건 그거였다. 왜 ‘이만큼이나’ 불안해야 하는 건지. 마침내 선을 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진정 겁낼 만한 것인지, 이게 정말 나의 불안인지, 혹시 누군가 나에게 허락도 없이 얹어두고 간 건 아닌지. 진작 한 번쯤은 확인해볼 일이었다.

그렇게 불안이 한바탕 쓸고 간 마음 밭에는 언젠가부터 말끔한 새싹이 하나, 둘 돋기 시작했다. 이윽고 얻은 것은 불안해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이 너머로 새로운 풍경이 펼쳐질 것이란 믿음이다. 이것이 불안이 내게 남긴 온기다.

내겐 불안 후에야 얻는 온기와 고민해야만 얻는 평온이 있었다. 지금 당신 안의 뜨거운 불안도 언젠가는 알맞게 식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따스한 온기를 남겨줄 것임을 나는 믿는다.

 

■ 작가소개
스미레(이연진)
자연육아, 책육아 하는 엄마이자 미니멀리스트 주부.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쓰는 엄마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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