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소한 이름들이 존재하는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리뷰] 사소한 이름들이 존재하는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3.1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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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어느 겨울날 난롯가에 앉아 장작불 타는 소리를 듣는 듯한 경험을 선물하는 소설이다. 실제로 마른 장작이 타는 장면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따스해지는 이유는, 우리 주변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존재들이 사실은 찬란히 빛나며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다.      

삶에 지쳐 명여 이모가 운영하는 시골 펜션으로 도망치듯 내려와 버린 해원은 그곳에서 독립책방지기 은섭을 만난다. 은섭은 그의 중고교 동창. 해원에게 은섭은 가까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던 존재, 은섭에게 해원은 그저 멀리서 지켜만 보던 짝사랑의 대상이었다. 이례적으로 추운 겨울밤은 해원이 은섭의 책방 문을 열게 하고, 해원이 은섭의 ‘사소한’ 존재를 마주하게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 「꽃」) 유난히 추운 겨울이 만든 일련의 사건들로 은섭의 책방에서 일하게 된 해원은 사소하지만 빛나는 이름들을 인지하게 된다. 겨울 들판에 둥글게 서 있는 마시멜로들은 곤포, 혹은 사일리지. 귤에 붙은 실은 귤락. 물 위로 찬란하게 부서지는 빛은…. 

그리고 은섭의 책방 이름은 ‘굿나잇책방’. 인생의 오랜 화두가 ‘굿나잇’이었다는 은섭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서로에게 굿나잇 인사를 보내는 사소하지만 소중한 모습을 허황되게 꿈꿔 지은 이름이다. 그 겨울 책방에서 해원은 잘 웃고, 잘 우는 따듯한 사람들과 만나고, 사람들이 잘 알아주지 않지만 그 어떤 책들과도 다른 독립출판물들을 만난다. 가령 『사물의 꽃말 사전』은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들에게 ‘꽃말’을 붙인다. 예를 들어 클로버의 꽃말이 행복, 행운이라면 카메라의 꽃말은 ‘찰나’.

‘굿나잇 아이린.’ 그리고 마침내 해원은 은섭이 룸미러에 걸어놓은 동전만 한 메달에 새겨진 이름 아이린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그 아이린이 바로 해원 자신이었음을. 겨울 책방에서 만난 이름들과 그 찬란한 사소함이 독자의 곁에서 장작 타는 소리를 낸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도우 지음│시공사 펴냄│432쪽│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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