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를레앙을 해방시킨 잔 다르크
오를레앙을 해방시킨 잔 다르크
  • 신금자
  • 승인 2008.03.19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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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금자[수필가·본지 편집위원]     ©독서신문

 신의 목소리를 듣다
 
 그녀는 들에 나가 놀기를 좋아했다. 시골마을 로렌의 눈부신 햇살과 바람소리를 즐겼다. 그러다 무수히 피어 있는 풀꽃 위에 몸을 뉘고 하늘을 보았다. 다리를 곧게 뻗고 두 팔을 펼치면 십자가의 편안함이 깃든다. 잇따라 파란 하늘에 “휙”, 성호를 긋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들었다.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렸다. 그녀가 답을 보내기도 했다. 요즘 들어 부쩍 생각이 많아졌다. 현실이 혼란스럽다. 그 당시 잔의 마을 동레미라퓌셀은 프랑스 땅이 아닌 일종의 자치구였다. 즉, 인접한 부르고뉴 사람들이 영국군과 한편이 되어 침략과 약탈을 일삼았다. 바로 그들에게 언니가 강간,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 탓에 많이 비참하고 우울했다. 순간, 십자가가 날아들었다. 칼이었다.
  
    “당신은 누구요?”
    “가서 프랑스를 구하라”
 
 잔은 1429년의 어느 날, “프랑스를 구하라” 는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녀는 현상에 따라서 행동했다. 17세 처녀의 몸으로 스스로 달려갔다. 칼을 쓰는 법이나 말을 타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신의 부름에 한 치 망설임이 있을 수 없다. 전쟁터에 나서는 것이 신에 의해 선택된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신의 계시라고 믿었다.
 즉시 잔은 고향 부르고뉴 지방을  떠나 샹파뉴, 노르망디를 거쳐 루아르 강변의 시농 성에 있는 샤를 황태자를 찾아갔다.
 
 
 오를레앙을 탈환하다
 
 당시 상황은 왕위 계승문제로 영국과 프랑스가 싸우던 백년전쟁의 후기였다. 그 와중에 프랑스는 내분까지 생겼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국왕 샤를6세 대신 국정의 실권을 장악하려고 귀족들이 싸우다 두 쪽이 났다. 북반구의 부르고뉴파와 남서부 아르마냐크파로 나누어졌다. 이를 영국의 헨리5세가 이용하였다. 곧 부르고뉴파와 결맹하여 프랑스 노르망디를 쳐서 여러 도시를 탈취하고 트루아조약까지 만들었다. 트루아조약에는 영국의 왕 헨리5세가 프랑스의 왕위 계승자가 되며 또 그 사후에도 헨리6세가 계승하도록 확약했다. 그러나 프랑스 국왕 샤를6세가 죽자 헨리5세가 프랑스 왕좌까지 차지하려들었다. 이에 샤를이 순응하지 않자 프랑스 왕위를 놓고 다툴 수밖에 없었다.
 이 때 신의 계시를 받았다며 먼 길을 달려온 잔 다르크를 샤를 왕자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접견했다. 그리고 그녀를 믿지 못하는 측근들이 말렸지만 신념이 확고한 그녀에게 별 기대없이 군사를 내주었다. 오를레앙은 영국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벼랑 끝에 내몰려 있었다.  그 전장의 상황도 잘 모르는 잔이 믿음으로 앞장섰다. 이것이 전황을 뒤집는 확실한 힘이 되었다. 잔이 부상 중에도 깃발에 힘을 실어 앞장을 서자 프랑스 지휘관들도 쉬지 않고 진격하여 요새를 모두 탈환했다. 사기충천한 군과 함께 마침내 그녀는 오를레앙 땅을 밟았다. 영국군의 진지마다 잔이 깃발을 꽂아 펄럭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마녀라고 무시하던 영국군이 완전히 패퇴하였다. 이제 잔은 전통적으로 프랑스 왕실의 대관식을 치르던 랭스성당으로 진군한다. 샤를6세가 죽은 지 어언 6년이 되었지만 샤를 황태자는 왕관을 쓰지 못했다. 이에 잔이 랭스까지 치고 들어가 샤를 황태자(샤를7세)의 대관식을 무사히 거행하도록 했다.  
 

 잔은 무슨 죄를 지었는가
 
 그로부터 계속 전쟁에 투입된 잔의 충성은 1430년 콩피에뉴 전투에서 끝이 났다. 말에서 떨어진 잔을 부르고뉴파 군이 영국군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그 무렵 샤를은 부르고뉴 군을 설득시키기 위해 협상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녀가 잡혀 영국군에게 인도되었을 때 그녀를 구하려하지 않았다. 그가 오를레앙의 빛나는 승리를 잊었는가. 그는 랭스 성당에서 그녀의 엄호로 쓰게 된 왕관을 내팽개칠 작정인가. 프랑스 왕실, 그들의 외면은 결국 잔을 죽였다. 잔은 영국군에게 인도된 그 이듬해인 1431년 마녀로 종교재판에 회부되었으며 이단(異端)선고를 받고 루앙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신의 계시는 신화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세계사에도 더러 있다. 전 유럽이 십자군으로 궐기한 사상 최악의 피비린내나는 종교싸움을 성전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잔 다르크 외에 신의 계시를 받았다던 ‘살라미스해전’을 보라.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위협했을 때 아테네는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으로 달려갔다. 신의 계시를 받으러 갔지만 거의 절망적인 것이어서 희망적인 계시가 있을 때까지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러니 필자는 잔이 신의 계시를 받았든 아니 받았든 관심 밖이다. 다만 프랑스가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전쟁에 뛰어든 잔을 왜 버렸는가가 의문이다. 화염에 싸여 죽는 날까지 매서운 심문을 견디며 투명하게 맞섰으나 그녀 곁엔 아무도 없었다.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그녀가 언제나 혼자였음이 애달프다. 신의 가호가 이런 것인가. 정녕 우리가 그리는 신이 전쟁에 관여하실 분인가. 아니 총칼을 겨누는 전장에서 “깃발을 들라” “진군하라” 고 한 것을 어찌 이해해야 하는가. 혹 그녀는 순교자의 열정으로 그 고통을 이겨내지 않았을까. 그게 아니라면 인간이 신에게 간절히 바라던 바, 종교적 구원의 영원성을 버린 삶의 열정이랄 수밖에 달리 답이 주어지지 않는다. 
 

  성녀에 오르다
 
 다행히 1456년 샤를 7세가 잔의 명예를 회복시켰다. 루앙에 입성하고 영국군을 프랑스에서 완전히 몰아냈으나 자신의 왕위 계승이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제라도 잔의 무죄를 밝혀서 그가 이단의 도움으로 왕이 되었다는 불명예를 씻어야 했다. 비록 왕의 명이라도 신성한 교회의 판결을 뒤집는다는 것은 참으로 험난했다. 루앙에서의 재판을 다시 검토하기 위해 옛 기록 문서들을 모두 모아서 성직자와 정치가의 재심을 거쳐 무죄판결을 내리는 데에 무려 25년이나 걸렸다니 말이다. 하긴 자신들의 정치, 종교적 이해관계에 지원사격하다보니 잔이 가진 사명의 의미, 그 판단을 신속히 내리지 못한 것이 명백해진 셈이다. 당시 서유럽에 일던 왕권전쟁과 교회 대분열도 한몫했으리라. 많이 늦었지만 복자를 거쳐 1920년 바티칸 성회에서 그녀를 성녀로 등재했다니 그 동안의 체증이 좀 가셔진다.
 
 열아홉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녀의 시간은 마술에 걸린 걸까. 루앙의 명소가 된 센 강가의 ‘잔 다르크 교회’ 스테인드글라스에 새겨진 기도하는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해맑다. 혹여 잔의 투명한 눈물을 잊지 말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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