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의 ‘사과 정치’, 인정과 수용의 아름다움
이낙연의 ‘사과 정치’, 인정과 수용의 아름다움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2.19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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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지난 11일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 부근에서 출근길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임미리 교수의 경향신문 칼럼에 격분한 더불어민주당이 임 교수를 고발 조치한 후 취하하는 ‘헛발질’에 여론이 들끓었다. 조금 기이한 것은 이에 대해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아닌 선거대책위원장직을 수행 중인 이낙연 전 총리가 ‘대리 사과’를 했다는 점이다. 어쨌거나 이를 임 교수가 받아들이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민주당 지도부의 공식 사과는 지난 1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이인영 원내대표가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다. 더욱 낮고 겸손한 자세로 민생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히며 ‘뒤늦게’ 이뤄졌다. 사과의 타이밍은 물론 사과해야 할 주체의 순서 모두 뒤죽박죽이 된 셈이다.

이 전 총리의 ‘발 빠른’ 사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11월 강기정 정무수석의 이른바 ‘버럭 논란’에 관해 “정부에 몸담은 사람이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국회 파행의 원인 가운데 하나를 제공한 것은 온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송구스럽다”고 신속하게 사과한 바 있다.

대통령의 비서인 정무수석의 잘못을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아닌 국무총리가 ‘대리 사과’하는 일은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당시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오늘 멋지고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했다. 아주 스마트하게 죄송한 마음을 표현해주셨다. 이러한 총리의 마음가짐과 진심 어린 사과 표명이 우리 정치를 한 단계 성숙시킨다”며 이 전 총리를 치켜세웠다.

당시 이 전 총리의 사과로 민주당은 야당의 보이콧 없이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찬반으로 국민이 분열됐다”는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의 지적에 이 전 총리는 “국민들에게 걱정을 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무작정 조 전 장관을 엄호하는 데 급급했던 민주당 지도부의 언행과는 사뭇 결이 달랐다.

물론 이 전 총리의 ‘사과 정치’가 모두의 찬사를 받은 것은 아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낙연의 위선’이라는 글에서 임 교수 칼럼 논란과 관련해 “사과는 없고, 텅 빈 수사만 있다. 아주 우아하게 손 씻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처럼 그의 사과를 곡해한다면 “사과는 가장 달콤한 복수”라는 아이작 프리드먼의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기자 출신이기도 한 이 전 총리는 언제나 진중하면서도 화려한 언변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그의 논리적인 말솜씨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문재인 정권의 실책을 보호하는 방어막이자 동시에 야당에 대한 강력한 공격 수단이었다.

또 앞선 사례들처럼 그는 사과해야 할 땐 그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사과하면서 정치의 품격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정치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감정’이 중요하다는 건 주지의 사실.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건 대개 사소한 ‘말’ 때문인데, 이러한 정치의 생리를 잘 아는 이 전 총리의 ‘사과 정치’는 고성과 막말로 점철된 국회를 환기하는 주된 이미지였다.

후쑹타오의 책 『정치가의 언격』을 번역한 조성환은 “어느 나라건 정치 지도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과 글은 전 국민이 듣고 보게 마련이다. 지도자들은 말 한마디를 고를 때에도 그 파급력과 영향력을 염두에 두면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혹여 이 전 총리의 사과(혹은 말)에 고도의 정치적 의도가 깔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의도는 ‘추측’할 수 있을 뿐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에 그 진의(眞意)는 가타부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명시적인 ‘언행’이며 사과할 때 사과할 줄 아는 ‘유연함’이다. 때론 사과의 이면에 담긴 의도보다 사과 그 자체가 중요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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