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평론가 듀나가 채집해온 영화 클리셰 이야기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 : 재미있는 영화 클리셰 사전』
[리뷰] 영화평론가 듀나가 채집해온 영화 클리셰 이야기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 : 재미있는 영화 클리셰 사전』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2.0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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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장르영화에는 그에 걸맞은 공식과 관습, 도상 등이 있습니다. 로맨틱 코미디에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의 첫 대면은 늘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시종일관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죠. 공포영화에는 늘 호들갑 떠는 조연이 있고, 그 인물은 애석하게도 가장 먼저 죽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장르가 됐지만, 그 옛날 조폭 코미디에 등장하는 조폭들의 의상은 대개 꽃무늬가 많았습니다.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의 영향이 컸던 걸까요?

우리는 이런 ‘진부한’ 혹은 ‘뻔한’ 영화의 공식과 관습, 도상 등을 ‘클리셰’(cliché)라고 부릅니다. 이 책은 한국에서 20년 넘게 영화평론을 써온 듀나의 영화 클리셰 모음집입니다. 영화의 맥을 정확히 짚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무겁지 않은 글로 풀어내는 영리한 영화평론가이자 SF작가로도 유명한 듀나의 클리셰 탐구는 일단 ‘재미’있습니다.

먼저 ‘게이 친구’ 챕터가 눈에 들어옵니다. 듀나의 말처럼 기자도 “나도 게이 친구가 있어요!”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실제로 왕왕 접합니다. 이 말의 이면에는 ‘나는 친구를 사귈 때 어떤 차별이나 편견을 두지 않는 사람’이라는 묘한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듀나는 이를 ‘정치적 공정성’이라고 표현합니다.

지금도 완전히 해결되진 않았지만, 영화 속 ‘게이 친구’는 일정 부분 ‘도구’로서 소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게 누구의 정치적 공정성을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이에 대해 듀나는 “사실 ‘게이 친구’는 게이 캐릭터를 받아들이면서 정작 그 사람의 섹슈얼리티는 살짝 뒤로 미루는 사기를 칠 때가 많다”고 재기 발랄하게 응수합니다. 듀나의 말처럼 이런 사기를 치지 않는, 게이 친구를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영화를 만나보고 싶군요.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성애 연애 중심은 당연하다’ 챕터 또한 흥미롭습니다. 듀나는 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2019)를 예로 들어 이성애중심주의에 사로잡힌 드라마 제작자들과 시청자들의 강박을 비판합니다. 듀나의 논지대로라면 이 드라마는 ‘이성애의 강박’ 때문에 이야기와 캐릭터가 산으로 가버린 작품입니다. 그는 “이런 기계적인 이성애 연애에 밀려 공들여 쌓아놓은 다른 관계들이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경우도 만만치 않게 많다”고 일갈합니다.

사람의 감정은 참으로 다양하고 복잡하며 미묘합니다. 연애를 오로지 ‘이성애’로 규정짓는 사랑의 영토라는 게 얼마나 얄팍하고 건조한가요! 이성애는 그저 사랑의 한 종류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모든 사랑의 관계를 이성애로 환원하고 있죠. 그러니까 ‘이성애 클리셰’라는 말도 무리는 아닐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그래도 개는 산다’ ‘분명히 저기 있었는데!’ ‘수다쟁이 악당’ ‘잘못 엿듣기’ ‘파리 어딜 가도 에펠탑은 보인다’ 등 재미있는 챕터가 많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한 번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 : 재미있는 영화 클리셰 사전』
듀나 지음│제우미디어 펴냄│272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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