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주의 영화롭게] ‘윤희에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하여
[송석주의 영화롭게] ‘윤희에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하여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2.05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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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윤희에게> 스틸컷

<윤희에게>는 여백이 많은 영화다. 그 여백은 신기하게도 비어있지 않고, 어떤 실감들로 가득하다. 특히 영화의 주인공인 윤희(김희애)와 쥰(나카무라 유코)을 둘러싼 공간이 그렇다. 비어있지만 가득하다. ‘비어있다’와 ‘가득하다’라는 상태가 동시에 가능한 영화. 공허하지만 충만하고, 외롭지만 쓸쓸하지 않은 영화. 이 영화를 감상하는 일은 그런 양가적인 감정의 틈입을 허용하는 일과 같다. 이토록 구슬픈 형용 모순의 세계라니!

사랑이야말로 그런 매력적인 균형의 합집합이 아니던가. 돌려 말할 필요가 없다. <윤희에게>는 레즈비언의 사랑에 관한 영화다. 소중한 사랑 앞에서 자신을 감출 수밖에 없었던 두 여성에게 이 영화는 눈부신 격려와 위로를 바친다. <러브레터>(1995)의 가슴 시린 눈발과 <캐롤>(2015)의 짙은 아련함, <연애담>(2016)의 건조한 일상성을 장면 곳곳에 드리우는 임대형 감독의 연출은 관객의 마음에 깊은 사랑의 골짜기를 판다.

그 사랑의 골짜기는 어떤 풍경인가? 카메라가 인물의 대화 장면을 포착하는 방식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감독은 한 화면에 잡을 필요가 없는 두 인물을 기어이 한 화면으로 포착한다. 바로 이 지점이 영화의 온도를 높인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활용된 대부분의 투 숏(two shot, 두명의 인물을 보여 주는 장면)은 각 인물의 주체성을 존중하고 보존하면서 동시에 ‘함께 있도록’ 한다. 롤랑 바르트의 말을 빌리면, ‘포옹의 이미지’이자 ‘떨어진 이미지’이다.

영화 <윤희에게> 스틸컷

입김을 불 때마다 각자의 불완전한 입김이 서로 상대방의 입김에 섞이기를 원하는 것처럼. 두 개의 이미지를 하나로 녹이는 것으로서의 포옹의 이미지. 그러나 사랑의 부재에서의 나는 서글프게도 누렇게 메마르고 오그라든, 떨어진 이미지이다. -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中

오타루 운하의 시계탑 앞에서 윤희와 쥰이 서로를 마주 보는 장면은 ‘포옹의 이미지’이면서 ‘떨어진 이미지’이다. 장면 그대로, 두 사람은 함께 있지만 떨어져 있다. 포옹은 늘 ‘떨어져 있음’을 전제한다. 뒤집어 얘기하면, 인간은 떨어져 있어야 비로소 포옹할 수 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랑의 얄궂은 생리이다. 이에 더해 윤희와 쥰이 20년 만에 해후하는 순간을 멀리서 투 숏으로 포착한 장면은 세상의 편견에 속박된 퀴어의 사랑을 단적으로 은유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사랑이라는 오래된 담론을 이미지로 반복하는 일은 지루하다. 이 지루함을 아는 감독은 그래서 말이 없고, 여백으로 점철된 간곡한 멜로드라마를 조각해냈다. 시원하게 말하지도, 보여주지도 않는 이 영화는 ‘편지’를 통해 서로의 애잔한 마음을 실어 나른다. 이마저도 당사자에게 정확하게 전달됐는지 알 길이 없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끊임없는 독백. 여백의 이미지와 독백의 서사. <윤희에게>가 표상하는 사랑은 이토록 외로운 처지에 놓여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누군지 알게 하는 사람이다. 내가 누군지 알게 하는 사람은 나를 외롭게 한다. 삼단논법에 의거,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외롭게 한다. 윤희에게 쥰이, 쥰에게 윤희가 그런 사람이다. <윤희에게>는 오랜 세월 쌓아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어서 그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지막을 갈음할 수밖에 없는 두 여성의 존재를 응시하는 영화다.

영화 <윤희에게> 스틸컷

바르트를 인용해 정리해보자. 어린 시절의 윤희는 쥰의 무게에 짓눌려 사랑의 대상 자체를 취소했다. 달리 말하면 윤희가 사랑했던 것은 사랑 그 자체이지 쥰이 아니었다. 즉 윤희에게는 쥰과의 이별보다 ‘사랑의 실패’가 더 가혹했던 것이다. 내가 느끼는 사랑이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없는 종류의 사랑이었기에, 윤희는 영화 속 대사처럼 늘 주변 사람들을 외롭게 했고, 그 자신은 더욱더 외로웠다. 우연처럼 재회한 윤희와 쥰이 서로에게 건넸던 “오랜만이네”라는 말과 “그렇네”라는 화답 사이엔(혹은 침묵 사이엔) 진정한 나 자신이 되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었던 데 대한 가슴 아픈 회한의 세월이 아로새겨져 있다.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윤희와 쥰이 영화의 ‘비어있음’을 담당한다면, 윤희의 딸인 새봄(김소혜)과 쥰의 고모인 마사코(키노 하나)는 이 영화에서 유일한 실재적 이미지이며 ‘가득함’을 대변한다. 새봄과 마사코는 영화에서 주인공보다 먼저 등장하며, 영화의 물꼬를 튼 편지의 최초의 수신인이자 발신인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윤희와 쥰은 “메마르고 오그라든, 떨어진 이미지”로 영원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윤희는 남루한 점퍼 대신 예쁜 코트를 입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새봄의 카메라 앞에서 윤희가 아스라하게 지어 보이는 웃음은, 그녀의 미래가 지금보다는 퍽 괜찮아질 것임을 은유하는 영화의 작은 희망이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극장을 나오면서 간절히 바랐다. 윤희가 오롯한 자신이 되기를. 자신을 잊지 말고, 잃지 않기를. 그래서 자신의 사랑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기를.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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