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막혀 이용 불가”... 놀이터 수돗가에서 ‘도덕성’을 논하다
“모래 막혀 이용 불가”... 놀이터 수돗가에서 ‘도덕성’을 논하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10.1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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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삶을 배운다. 사람 몰리는 놀이기구 뒤에 줄을 서서 ‘기다림’을 배우고, 미끄럼틀을 거꾸로 오르고 싶은 마음을 다잡으며 본능(?)을 이겨내는 법을 습득한다. 때때로 놀이기구와 기구를 잇는 출렁다리를 힘껏 흔들며 걷다가 자신보다 어린아이가 무서워하면 발놀림을 줄이는 ‘배려’를 체득한다. 또 자신의 부주의로 시설이 파손돼 이용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는 ‘한 사람의 잘못된 행동으로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모래로 배수구가 막혀 수도 이용이 불가합니다.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최근 위생문제로 모래사장을 없애는 추세지만, 아직도 상당수 놀이터에 모래사장이 존재하고, 그런 곳의 수돗가에는 위와 같은 안내 문구가 걸려있기 마련이다. 힘없이 흐트러지는 모래에 점성을 더해 원하는 모양을 찍어내기 위해서는 물이 필수지만, 누군가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놀이터를 찾는 모든 아이가 물을 이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수리가 되고 물은 다시 나오겠지만, 오래지 않아 누군가가 퍼 나른 모래는 다시 배수구를 막고, 그럼 또 이용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런 과정을 수차례 거친 사당동의 해밀어린이공원을 찾은 한 보호자는 “하지 말라면 좀 안 했으면 좋겠다. 근데 어디 아이들이 그게 되겠나. 어른들도 규칙 안 지키는 경우가 태반인데”라며 “아이는 아이대로 모래놀이를 제대로 못해 속상하고, 부모 입장에서는 모래 묻은 아이를 씻길 곳이 없어 불편하다”고 말했다.

사당역 인근 까치어린이공원을 찾은 어느 보호자 역시 “아이들이 물을 받아 모래에 붓는 게 아니라 모래를 퍼서 배수구에 쏟는 것 같은데, 가동 중지 공지문을 볼 때마다 ‘애들이 그럴 수 있지’ 하면서도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많다”고 성토했다.

반면 관리 방식에 전환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도덕심보다 호기심이 강하고 인내력보다는 즉흥력이 강한 아이들의 특성을 고려한 운용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섯 살 아들을 둔 한 엄마는 “수도 배수구에 모래를 넣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사고 치는 건 순간”이라며 “(모래 놀이에 물이 필요하다고 ) 보채는 아이 때문에 배수구에서 모래를 직접 빼보려고도 했지만 그러기 어려운 구조였다. 이용자가 좀 더 간편하게 모래를 걸러낼 수 있는 구조였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작구청 공원 관리 관계자는 “막힌 걸 발견하면 이용 금지 공고문을 붙이고 기간제근로자 분들이 다니면서 고치는데, 그건 보통 하루면 된다. 문제는 그게 반복된다는 거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과태료를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배수구 모래 막힘으로 불편을 호소하는 ) 민원이 들어오긴 하는데, 과연 그걸(모래 빼내는 작업) 직접 하실 분들이 있겠나 싶다. (이용자가 손쉽게 모래를 건져 낼 수 있는 ) 구조변경은 고려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은 책 『문용린의 행복교육』에서 “진정한 도덕성이란 이타심, 배려, 양심 등과 같은 정서적 가치에 자제력, 집중력, 분별력 등의 인지적 능력이 더해지고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말한다.

놀이터 수돗가에서 도덕성을 들먹이는 것이 과해 보일 수 있으나, 적어도 그럴 준비가 된 사람에게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아이들의 도덕적인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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