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을 끄세요, 성취와 위로가 켜집니다
휴대폰을 끄세요, 성취와 위로가 켜집니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9.2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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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이맘때쯤이면 서점가에는 이상한 병(病)이 생긴다. 매년 4분기가 시작되는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위로’라는 키워드가 유행하고 그 유행이 이듬해 봄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도서 월정액 서비스 ‘밀리의서재’나 ‘리디북스’에서도 벌써부터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나 하상욱 작가의 『튜브, 힘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 정문정 작가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하완 작가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 등 위로를 담은 책의 순위가 오르고 있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다. 매년 반복되니 ‘병’에 비유하자면 만성(慢性), 혹은 고질병. 병인(病因)이 뭘까? 혹자는 말한다. 만물이 결실을 맺는 가을, 한 해 동안 결실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매번 좌절감을 느끼고, 추운 겨울이 다가올수록 온기와도 같은 ‘위로’를 찾는다. 이맘때쯤 발생하는 자기계발서 유행을 볼 때도 이러한 설명은 일리가 있다. 사람들은 ‘성취’를 찾고 싶지만, 경기 악화, 취업난 심화 등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각종 난관에 따른 ‘성취의 부재’로 ‘위로’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경기 악화나 취업난 심화 등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들만이 성취를 가로막는 것은 아니다. 애덤 알터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심리학과 겸임교수는 지난 8월 출간된 책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에서 사람들이 그동안 잘 인식하지 못했던 장애물을 보여준다. 그는 우리가 상용하는 전자기기들, 특히 스마트폰이 마약보다 더 중독성이 강하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수면을 제외한 그 어떤 일상 행위보다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했으며, 한 달로 치면 거의 100시간, 평생으로 치면 평균 11년이라는 시간을 스마트폰에 투여하고 있었다. 1시간에 평균 세 번 휴대폰을 집어 드는 사람들은, 휴대폰이 없으면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는 ‘노모포비아’, 즉 모바일 결핍 공포증(no-mobile phobia)에 시달리고 있다.

평생 11년이라는 시간을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대신 어떤 ‘성취’에 매달렸다면 누구나 무언가를 이뤄냈을 테고, 어떤 분야의 대가가 되지 않았을까. ‘1만 시간의 법칙’(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의 1만 시간도 하루 9시간씩 3년을 투자하면 채워지는데,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남으로써 11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리고 스마트폰은 단지 이용자의 시간만 빼앗는 것은 아니다. 지난 7월 방영한 ‘SBS 스페셜’의 ‘난독시대’ 제작진에 따르면 스마트폰을 통해 읽는 행위는 난독증을 유발하고, 논리력 및 기억력 감퇴를 일으킨다. 우리를 유혹하는 자극적인 정보가 넘쳐나는 스마트폰에서 독자는 뭐든지 대충 읽게 되고, 사색하거나 기억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요즘 학생들이 세 줄이 넘어가는 문장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는 참담한 실상도 보여줬다. 이는 책이나 시험지를 읽을 때도 그대로 이어진다. 미국의 저술가 프랭클린 포어 역시 책 『생각을 빼앗긴 세계』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만약 누군가가 시험을 통해 무언가를 성취하려한다면 스마트폰은 멀리해야 한다. 

올가을부터 내년 초까지 ‘위로’라는 병은 다시 유행할 것이다. 이 병이 유행할 때면 우리는 늘 이런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어떤 말을 듣고 싶은 걸까? 그리고 울고 있는 친구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으레 그러하듯, ‘듣고 싶어 하는’ 말들을 쏟아낸다. 서점에 쏟아져 나오는 ‘위로’ 관련 에세이들은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 “힘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 “나는 뻔뻔하게 살기로 했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 메시지는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어도 괜찮아.”

그리고 매년 이맘때쯤 범람하는 비슷비슷한 자기계발서들로 일종의 ‘처방’을 내릴 것이다. 그동안 ‘성취’하지 못했으니 “책을 읽어라” “성공하는 습관을 들여라” “아침형 인간이 돼라” “일기를 써라” 등등. 물론, 자기계발서는 성취의 동력이며, ‘위로’라는 고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진부하게 병의 원인을 찾고 식상하게 처방을 내린 것은 아닐까. 이 시기 자기계발서의 유행을 비웃듯 더욱더 유행하는 ‘위로’ 관련 서적은 자기계발서들이 충분한 처방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위로’가 필요한 당신, 올해는 ‘성취’를 위한 ‘디지털 디톡스’를 처방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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