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新문방사우] 당신이 ‘이북리더기’를 사야 하는 납득할만한 이유
[기획-新문방사우] 당신이 ‘이북리더기’를 사야 하는 납득할만한 이유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9.20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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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책 읽는 사람 곁에는 늘 붓과 먹, 종이와 벼루가 있었다. 읽는 행위와 쓰는 행위는 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읽는 자는 썼고. 쓰는 자는 또 읽었다. 오늘날 우리도 다르지 않다. 무언가를 게걸스럽게 읽어대고 또 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곁에는 무엇이 있는가. 읽는 행위를 창조 행위와 연결하는 新문방사우를 소개한다.
'리디북스'를 운영하는 주식회사 '리디'의 이북리더기 '페이퍼 프로'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이북리더기를 처음 접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보면 되지 왜 굳이 이북리더기를 사야 하는가?’라고 질문한다. 너무 답답하기 때문이다. ‘전자잉크 디스플레이’(수많은 마이크로캡슐 안에 담긴 검은색, 흰색 입자를 움직여서 화면을 표시하는 새로운 방식의 디스플레이) 방식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이북리더기는 LCD나 OLED 방식을 사용하는 여타 전자기기보다 반응 속도가 2~3배 정도 느리다. 어디 느린 것뿐인가, 사용할 수 있는 기능도 많지 않아 오로지 책을 다운받고 책을 읽는 용도 외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그러나 기자를 비롯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북리더기를 사야 하느냐’라고 묻는다면, 아마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특히, 종이책이 전자책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비유하자면 이북리더기는 현대판 책보(冊褓, 책을 싸는 보자기)다. 게임도 하고 카톡도 하고 유튜브도 할 수 있는 그런 마법의 양탄자가 아니라, 오롯이 종이책만을 싸서 다닐 수 있는 그런 책보. 단 하나 마법 같은 점이 있다면, 스마트폰보다 가벼운 이 책보 안에 수백만권의 책, 많게는 도서관 하나를 넣어 다닐 수 있다는 점. 그게 마법이라고? 하긴, 그 정도는 요즘 시대에 참 흔해진 마법이긴 하다.  

이 ‘책보’에 들어가는 책을 굳이 ‘종이책’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북리더기를 통한 독서 경험이 종이책과 스마트폰·태블릿을 통한 독서 경험의 중간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일단 전자잉크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의 활자처럼 스스로 발광하지 않는다. ‘전자잉크 디스플레이’는 그저 캡슐에 전하를 가해 캡슐 내부 색상 입자들의 배열을 바꾸는 방식으로 흰색과 검은색을 나타낸다. 따라서 우리가 어두운 밤 독서등을 켜고 책을 보듯, 어두운 곳에서는 자체 프런트라이트를 켜야 한다. ‘전자잉크 디스플레이’ 덕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책을 읽을 때보다 눈이 덜 피로한가는 과학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북리더기가 좀 더 종이책과 유사한 시각(視覺)을 주는 것만은 확실하다. 

또한 ‘전자잉크 디스플레이’는 의도치 않게 이북리더기와 종이책 사이의 유대감을 형성한다. 캡슐 안에 들어 있는 흑백 입자는 또렷한 검은색과 또렷한 흰색을 표현하지 못한다. 이북리더기상의 흰색은 옅은 회색이며, 검은색은 아주 검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어중간한 색은 종이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어색하지 않다. 흔히 중고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여러 번 읽혀 빛바랜 책의 색이기 때문이다. ‘전자잉크 디스플레이’의 그리 빠르지 않은 반응 속도 역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보다 느릴 뿐, 책을 읽기에는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한 장에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속도는 종이책장을 넘기는 속도와 유사하다.             

혹자는 “돈으로 ‘제한’을 산다”고 표현했다. 10만원대가 넘어가는 이북리더기는 그 기능에 비해 결코 저렴하지 않다. 그러나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돈으로 ‘기능’을 사왔다. 더 빠르게, 더 효율적이게, 더 많이, 더 가성비 있게 움직이는 기기는 그 ‘기능’에 비례해 값이 매겨졌다. 그러나 정말 ‘기능’만이 우리가 숭배해야 할 가치인가. 

‘기능’은 우리에게 마치 시바(흰두교의 3대 신 중 하나로 파괴의 신으로 불린다. 열 개의 팔과 네 개의 얼굴을 가졌다고 전해진다.)를 연상케 하는 여러 개의 손을 줬지만, 동시에 우리를 파괴했다. 미국의 저술가 프랭클린 포어는 책 『생각을 빼앗긴 세계』에서 쏟아지는 스마트폰 등을 통해 들어온 수많은 자극적인 정보들이 인류를 늘 주의 산만한 상태로 만들어 ‘사색 가능성’을 빼앗는다고 지적했다. 작가 최영철 역시 책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한 시간』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자극적이고 나쁜 정보들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전해져 우리 내면에 소음을 일으키고, 집중하는 힘인 ‘자발주의력’을 빼앗는다”고 염려했다. 그에 따르면, ‘자발주의력’이 없는 인간은 내적 평화를 이룩해 힐링을 얻는 생산적 시간 대신 외부와의 연결에 골몰해 소비적인 시간만을 보내게 된다.  

“돈으로 제한을 산다.” 이북리더기는 순수하게 책을 읽는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을 뿐, 책을 읽는 도중에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카톡 메시지에 응답하거나, 커뮤니티 게시글을 확인할 수 없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책을 읽다가 몇 분도 안 돼서 유튜브 영상을 틀어보는, 카톡 메시지를 보내는, 커뮤니티 게시글을 확인하는 우리는 마치 두 손에 종이책이 들린 것과 같이 손이 묶인다. 그 덕에 ‘차단감’을 얻은 우리는 오롯이 그 책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손이 묶인 덕에 오히려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리고 자유는 창조의 원천이다. ‘굳이 이북리더기를 사야 하는가?’, ‘그렇다’고 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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