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여친) 있으세요?’ 이게 성차별 발언이라고…
‘남친(여친) 있으세요?’ 이게 성차별 발언이라고…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09.19 17:36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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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성차별(sex discrimination)이란 한 성이 다른 성을 차별적으로 다루는 것을 말한다. 성차별은 주로 남성이 다른 성에게 가하는 혐오와 폭력을 일컫는다. 이는 남성이 다른 성에 비해 신체적·정신적으로 우월하다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다. 성차별은 성(性)을 지칭하는 두 용어인 섹스(sex)와 젠더(gender)의 개념 차이에서도 발견된다.

섹스가 생물학적 성을 일컫는다면, 젠더는 사회문화적 성을 지칭한다. 섹스라는 용어는 남녀의 근본적 차이가 신체 구조에 있다고 보고, 이에 따라 성역할이 나누어지는 게 자연스럽다는 의미가 내포된 성차별적 단어다. 여기서 간성인(남녀 성기를 모두 갖고 태어난 사람)과 트렌스젠더 혹은 '남녀 어디에도 속하길 원치 않는 사람'을 배제한 '양성평등'이라는 용어 역시 성차별적이다.

반대로 젠더는 남녀의 근본적 차이란 없으며 모든 것을 사회문화적 결과물로 바라본다. 주디스 버틀러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젠더 트러블』에서 기존의 섹스, 젠더 개념이 이성애중심주의를 전제한다는 점을 비판하며 이 모두를 ‘수행성(performativity)’의 개념으로 인식한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쉽게 말하면 성과 관련된 모든 개념에 있어서 ‘본질적’이거나 ‘고정된’ 것은 없다는 게 주디스 버틀러의 입장이다. 그녀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모름지기 여자는(혹은 남자는) 말이야”라는 화법은 지극히 성차별적이다. 두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올해 새내기인 대학생 윤모씨(19)는 학회실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평소 액션 게임을 즐기던 그녀는 학회실에서 자신과 같은 게임을 하고 있는 남자 선배에게 ‘게임 노하우’를 물었다. 그러자 선배는 “여자가 하기엔 좀 어려울 수 있어”라고 대답했다.

윤씨는 “게임을 능숙하게 하는 데 있어서 남녀를 대입하는 건 잘못된 것”이라며 “나중에 술자리에서 선배에게 얘기했다. 선배는 ‘너를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하려 했던 게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젠더 감수성이 부족해서 나온 말이었다’며 내게 사과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자신을 레즈비언 여성이라고 밝힌 최모씨(31)는 만나는 사람마다 “남자 친구 있어?”라는 말 때문에 곤혹스럽다. 그녀는 공개적으로 커밍아웃(coming out,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밝힘)을 하지 않은 상태다.

최씨는 “동성애자라는 걸 부모님도 모르고 여동생과 친한 지인 몇 명만 안다. 명절에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친척들이 ‘만나는 남자가 있느냐’고 물어본다”며 “늘 있는 일이지만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씁쓸하다. 모든 사람이 이성애자일 거라는 생각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위 두 사례는 실제로 여성이나 동성애자들이 자주 겪는 일이다. 여기서 우리가 젠더 감수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 사례의 경우, 누군가와 대화할 때 항상 남녀의 정해진 성역할이 있다는 고정관념을 타파할 필요가 있다. 남자라서 이렇고, 여자라서 저렇다는 성차별적 인식에서 벗어나 사람에 따라 무언가를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두 번째 사례의 경우, 애초에 상대방이 먼저 얘기하기 전에 굳이 남자 친구(혹은 여자 친구)의 유무를 물어보지 않는 게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어보고 싶다면, “애인 있어요?” “사귀는 사람 있어요?”라고 물어보자.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라. 당신이 남성 이성애자인데 누군가가 “남자 친구 있어요?”라고 물어본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젠더와 사회』의 저자 김민정 교수는 「인류학으로 젠더 읽기」에서 “오늘날의 젠더 체계는 양성의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고 심지어 성 정체성에 대한 선택도 허용하는 추세이지만 남녀의 구분은 여전히 중요하다”며 “하지만 사실 섹스나 젠더가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 없는 범주라는 것을, 즉 국가와 계급, 인종, 종교, 연령, 직위 등 사회적 관계가 없는 진공 상태에서 성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어 “인류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 개인은 거의 모두 그리고 언제나, 자연스러운 성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여성이거나 남성이어야만 한다는 사회적 압력 속에서 삶을 꾸려왔다”며 “젠더의 문제로 야기된 불평등한 현실을 제대로 이해해야 변화를 위한 노력도 할 수 있다”고 당부한다.

결국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익숙한 사자성어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차이가 차별이 되면 안 된다. 남자라서 이래야 하고, 여자라서 저래야 한다는 건 애초에 없다. 남성과 여성을 차별적으로 이분화하지 말고, 내 주변인 중 누군가가 항상 동성애자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놓치지 말자. 이 모든 게 자신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자. 그리고 공부하자. 그것이 혐오와 차별을 줄이는 첫 번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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