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과 공소시효... ‘인간의 교화는 가능한가’
화성연쇄살인과 공소시효... ‘인간의 교화는 가능한가’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9.1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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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제 버릇 개 못 준다.” 사람이 잠시 변할 수는 있어도 천성은 어찌할 수 없다는 의미를 지닌 말이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른다. 18일 우리나라 범죄 사상 역대 최악의 미제 사건으로 손꼽히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다른 살인혐의로 수감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그 유력한 용의자가 18일 특정됐다. 범인은 살인혐의로 복역 중인 A(56)씨. 사실 용의자가 특정됐다는 소식은 지난 1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우리 경찰서 근처 교도소에서 난리가 났다. 십수 년 전 보관해 놨던 화성연쇄살인사건 진범 용의자와 (교도소 수감자의 ) DNA가 같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면서 알려졌다. “순경을 단지 얼마 안 된 초급 경찰”이라고 밝힌 글쓴이의 글에 누리꾼은 반신반의했으나, 약 일주일가량 지나 경찰이 해당 내용을 공식 발표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이번 용의자 특정은 분석 기술 발달의 영향이 컸다. 최근 DNA 기술의 발달로 오래된 증거물에서도 DNA 검출이 가능해지면서 앞서 경찰은 피해 여성의 속옷을 국립과학수사원에 분석 의뢰했고 지난 7월 일치하는 대상자를 찾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경찰은 “부산 교도소에 복역 중인 A(56)씨의 DNA가 화성사건 중 세 사건의 증거물에서 채취한 DNA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현재 A씨는 1994년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로써 1991년 11월(제10차 범행 )을 마지막으로 화성연쇄살인이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당시 일각에서는 “범인이 마음을 고쳐먹은 것 아닌가”하는 주장과 “잠복기일 뿐”이라는 여론이 혼재했는데, 실제로는 교도소에 복역 중이라 범행을 저지르지 못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과거 한 방송에서 “(연쇄살인범은 ) 살인 행각을 멈출 수 없다”며 “(범인은 ) 1991년 이후 사망했거나 장기간 복역 중일 것”이라고 했던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예측이 적중했다는 평이 나온다.

현재 A씨는 범행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설령 범행을 인정한다고 해도 처벌은 받지 않는다. 2006년 4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마지막 범행인 10차(1991년 4월 )의 공소시효(기한 15년 )가 만료됐기 때문이다. 2015년 살인 등 강력범죄에 한해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일명 ‘태완이 법’이 발효됐지만, 이번 사건에 소급적용하기 어려워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표창원 의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우리나라는 잘못된 수사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기소를 못 할 바엔 아예 수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관행처럼 자리 잡고 있다”며 “그러나 기소보다 중요한 건 진실이다. 유가족의 한을 풀어주는 것도 수사의 목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공소시효가 만료된 경우 범인이 잡힌다 해도 법적 처벌을 내릴 수 없음은 물론 범행 관련 내막을 밝혀낼 수도 없는 상황이다. 다행히 이번 사건에 대해 경찰은 “우리나라 범죄사상 최악의 미제 사건인 만큼 진실 규명을 위한 모든 수사기법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경찰의 이런 기조가 관심받지 못하는 여타의 사건에도 동일하게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현재 A씨의 DNA가 확인된 범죄는 화성연쇄살인사건 열 건 가운데 5차(1987년 1월 ), 7차(1988년 9월 ), 9차(1990년 11월 ) 세 건이다. 1989년 범인이 검거된 8차(1988년 9월 ) 사건 외에 여섯 건이 미제로 남아, A씨의 자백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표 의원이 과거 펴낸 책 『한국의 연쇄살인』에 따르면 연쇄살인범은 ▲평소 속을 잘 드러내지 않고 조용한 편으로 눈에 띄지 않고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 대상에는 대단한 집중력과 인내심을 보인다. 실제로 A씨는 20년 넘게 복역하면서 1급 모범수로 생활해 왔다. 또 손재주가 좋아 2011년과 2012년에는 수감자 도자기 전시회에 직접 만든 도자기를 출품하기도 했다. 부산교도소 관계자는 “평소 말수가 없이 조용히 생활해온 대표적인 모범수”라며 “연쇄살인사건 용의자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공소시효는 범죄자의 교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제도다. 교정시설에서 교화받지 않아도 도주 기간 내 수감에 상응하는 고통을 받았을 것으로 간주하고 처벌의 영속성을 제한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 20여 년간 복역하며 교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그. DNA가 확인된 세 건 외에 여섯 건에 관한 진실 규명이 그의 입에 달린 상황이다. 과연 그는 남은 여섯 건의 범인이며, 그 사실을 자백할까?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그의 자백에 관심이 쏠린다. 아울러 ‘과연 인간은 교화될 수 있는가’하는 의문도 관심에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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