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소년과 어른 사이에서 읽은 『호밀밭의 파수꾼』
[리뷰] 소년과 어른 사이에서 읽은 『호밀밭의 파수꾼』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09.1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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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대개 행복은 순간이며 찰나인 경우가 많다. 아니, 그렇게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게도 가치 있는 것은 끝남과 동시에 시작한다. 거기에 인생의 슬픔과 역설이 있다. 우리는 그 황홀한 행복이 기어이 내 눈 앞에서 사라져야 비로소 실감한다. '아 옛날이여'라는 촌스러운 탄식과 함께.

『호밀밭의 파수꾼』은 그 촌스러운 탄식의 현재 진행형이다. 익히 알고 있는 것을 무기력하게 틀려버리고 마는 소설이다. 이 책은 순수와 영악의 실체를 상징적으로 그려내며, 꿈과 현실의 지난함을 냉소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고뇌하는 한 젊음의 발걸음을, 그 정신적 방랑을 아프게 채색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등장했던 1950년대의 미국은 이른바 '보수'가 득세하는 사회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빈곤에 허덕일 때, 미국은 승전국으로서의 지위를 누리며 경제적 호황을 즐겼다. 이 당시의 미국인들은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염원하며 보수를 비호했다. 가치의 다양성이 말살되는 것을 묵인하고 오로지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생각하며 세상에 순응했다.

소설 속 주인공인 16세 소년 '홀든 콜필드'의 행적은 당시 이러한 미국인들의 정신적 빈곤을 겨냥하고 있다. 콜필드는 생각한 바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겉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은 한 사람의 번뜩이는 재치 혹은 발칙한 상상만으로 변혁되는 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이 벌어졌던 과거는 현실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암울한 미래는 희망을 잉태시키지 못하기에 콜필드가 딛고 있는 현실은 더없이 비참하다. 과거, 현재, 미래는 서로 아무런 상승효과를 내지 못한다. 그러한 현실 위에서 콜필드는 자신이 그리는 동화가 불가능의 세계임을 안타깝게 받아들인다. 불가능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는 『중국행 슬로 보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시인은 스물한 살에 죽고, 혁명가와 로큰롤 가수는 스물네 살에 죽는다"고 얘기한 것과 비슷하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더 이상 술에 취해 전화 부스 안에서 자는 것도, 정신을 잃을 만큼 술을 마시는 짓도, 새벽 네 시에 도어스 LP판을 한껏 볼륨을 높여 듣는 짓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아는 사람의 부탁으로 생명보험에 가입하고 호텔 바에서 술을 마시며 치과 영수증을 챙겨 의료비를 공제받는, 그러한 어른이 됐기 때문이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콜필드는 현실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소년임과 동시에 이상과의 결속을 염원하는 어른이기도 하다. 이는 그가 나중에 과학자나 변호사가 아닌, 호밀밭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이른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 맥이 닿아있다.

이미 순수성을 상실하고 현실의 초입에 서있는 콜필드가 자신의 꿈을 간접적으로나마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직 상실되지 않은 순수성을 엄호하는 것. 즉 현실 세계에 드리워진 허위와 위선, 배신과 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이 오염되는 것을 지켜내는 것뿐이다. 콜필드가 꿈에서 그리는 '호밀밭'과 '절벽'의 공간적 이미지, 그리고 '파수꾼'이라는 직업은 이런 점에서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콜필드의 몸짓과 발짓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으리라 생각한다. 씁쓸함의 이유는 이미 우리는 호밀밭에서 멀리 떨어졌기 때문이고 거기에 미소를 갖다 붙인 이유는 우리가 현실과 적절히 타협하며 처세할 줄 아는 어른이 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이 소설을 '블랙코미디(black comedy)'로 지칭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박주영의 소설 『백수생활백서』의 한 구절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게 '명확한 결론'은 아니지만 그냥 '결론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콜필드가 이 구절을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우리와 마찬가지로 씁쓸하게 웃을지도 모른다.

모두들 조금씩 세월에 마모되어 가고 있지만,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못해서 양보할 수 없어서 세상과 여전히 대립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타협을 모른다는 건 불행의 첫 번째 근원이다. 하지만 그 타협을 모르는 모습으로 세상 위에 설 수 있다면 절대 행복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무작정의 믿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희망 없이 살아남는 법을 나는 모른다.

『호밀밭의 파수꾼』
J. D. 샐린저 지음│공경희 옮김│민음사 펴냄│352쪽│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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