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가 전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가 전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9.03 17: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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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앙투아네트' 출연진이 프레스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뮤지컬 '마리앙투아네트' 출연진이 프레스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웅장한 대서사가 눈과 귀를 사로잡는 공연이었다. 5년 만에 다시 돌아온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볼거리와 들을거리 가득한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펄럭이는 프랑스 국기와 샹들리에가 비춰지며 시작된 공연, 조명이 무대를 내리 비출 때마다 배우들의 카랑카랑한 노랫말은 공기를 갈라 귓바퀴를 휘어 감았고, 18세기의 로코코 양식(18세기 유럽에서 인기를 얻은 패션 양식으로 곡선 사용을 강조함 )으로 한껏 뽐을 낸 배우들의 화려한 모습은 생경한 시각적 자극을 선사했다. 실제로 당시 사람들은 한껏 힘을 준 화려한 복장과 온갖 모양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구사하며 멋의 대향연을 펼친 것으로 알려진다. 그만큼 사치와 허세가 만연했던 시기였다.

뮤지컬 '마리앙투아네트'에서 마리 역을 맡은 배우 김소현. [사진=마리앙투아네트]
뮤지컬 '마리앙투아네트'에서 마리 역을 맡은 배우 김소현. [사진=마리앙투아네트]

극의 배경은 당대 유럽에서 가장 세련되고 호화스러웠던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과 빈민가 파리 마레지구다. 그 안에서 대척점을 이루는 인물은 궁전에 사는 마리 앙투아네트(이하 마리 )와 빈민가에 사는 마그리드 아르노(극 중 유일한 허구 인물 ). 마그리드는 화려한 연회가 펼쳐지는 궁중에 침입해 마리에게 빈민들의 참상을 전하지만 그가 얻어낸 건 호사가들의 멸시·천대뿐이다. 마리는 처벌 위기에 놓인 마그리드를 돕지만, 그건 일말의 ‘동정심’이었을 뿐 빈민 삶의 곤궁함에 대한 이해와 공감 때문은 아니었다.

극중 마리는 사치스럽고 세상 물정 모르는, 본인이 만들어 낸 가상의 세상에 사는 새장 속의 화려한 공작 같은 인물로 그려진다. 오스트리아의 공주로 프랑스와의 우호관계를 위해 열네살의 나이로 루이 16세와 정략 결혼한 마리. 극중에서는 사치의 대명사로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여느 귀족과 왕족들보다 상대적으로 검소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당시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을 지원해 국고가 바닥나다시피 한 상황에서 궁핍한 삶을 연명하는 국민의 눈에 마리는 ‘증오의 대상’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었다. 극중 오를레앙 공작과 거리의 시인 자크 에베르, 마그리드는 마리에 대한 거짓 소문을 퍼뜨려 반대 여론을 조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민중 봉기를 일으키면서 결국 마리와 루이16세는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다. 극중에서 마리는 추기경을 모함했다는 거짓 혐의로 사형에 처해지지만, 실제로는 아들 루이 17세와 근친상간했다는 거짓 혐의로 단두대에 올랐다.

 마리와 대척점에 선 인물 마그리드 아르노를 열연한 배우 김연지. [사진=마리앙투아네트]

당시 마리를 향한 민중의 반감은 엄청났다. 마리가 말한 것으로 알려진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라는 말은 민중의 반발 심리를 여실히 드러내는데, 실제로 마리는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지만 대중은 그녀를 향한 불신에 ‘가짜뉴스’를 용납하며 증오를 키워냈다. 사실 해당 발언은 장자크 루소의 『참회록』에 등장하는 토스카나 공작의 부인으로 추측되는 악명 높은 여군주가 한 말이다. 발터 크래머 역시 책 『상식의 오류 사전 747』에서 “해당 발언은 마리 앙투아네트 입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어느 누구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실제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 말로 돼 버렸다”며 “그녀를 살해한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조금이나마 양심의 가책을 덜고자 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많은 역사가 사이에서 중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14년 초연 이후 5년 만에 돌아온 ‘마리 앙투아네트’는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역사는 인류 보편적 특성을 지니며, 세월을 따라 돌고 돈다’는 말처럼 해당 극이 오늘날 우리사회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마리는 유독 어떤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 인물은 다름 아닌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권력의 정점에 있었으나 민심을 읽어내지 못해 촛불혁명으로 몰락한 지도자. 세월호 사건이 촉발한 대(對)정부 불신은 ‘사이비 종교에 심취해 세월호 학생들을 수장해 제물로 바쳤다’ ‘5촌 조카 은지원은 (박 대통령이) 최태민과 불륜을 지어 낳은 아이’ 등의 루머를 확산시켰고, 거기에 최순실 국정농단이 더해지면서 결국 박 대통령은 죄수 신분으로 전락했다.

그를 변호했던 채명성 변호사가 “국민은 대통령이 세월호 7시간 동안 굿이나 하고 섹스나 한 더러운 여자라는 부정적 이미지에 분노하고 실망해 탄핵을 외쳤는데, 결국 재판 과정에서 루머였다는 것이 밝혔졌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두 사람은 대중의 ‘미움’을 샀다는 점과 그로 인해 혁명을 야기했고, 결국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는 점에서 유사한 모습을 지닌다. 다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마리는 억울한 누명을 벗고 일정 부분 재평가를 받게 됐지만, 박 전 대통령은 아직 유죄 혐의를 벗지 못했고, 아마 영원히 벗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다.

책 『안희정의 길』에서 “꼭 한 세대 전이었습니다. 30년 전 1987년 1월 저는 동년배인 서울대학생 박종철씨가 고문을 못 이기고 유명을 달리한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6월 항쟁에 동참했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습니다. 30년이 흘러 2017년 1월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가한 스물두 살 청년은 여전히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이게 나라입니까?’”라며 “부끄럽습니다. 참담합니다”라고 말했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현재 비서 성폭행 혐의로 수감돼 있다. 또 촛불정부에서 민정수석을 맡았던 조국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사모펀드 의혹, 자녀 교육 특혜로 민심 이반을 경험하고 있다. 모두가 정의를 부르짖지만 국민이 생각하는 정의와 괴리가 있는 현 상황은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려내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메시지가 묵직한 여운을 남기게 한다.

왕정 시대 왕비로는 특별히 부적절한 행동이 없었다는 평을 받지만, 그 시대의 바람은 왕정 시대의 왕비가 아니었기에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왕비 마리. 그의 죽음 이후 226년이 흐른 현 시대는 어떤 바람을 담고 있을까?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안 전 도지사의 구속, 조 후보자가 겪고 있는 민심이반에 그 답이 담겨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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