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의 ‘일로 만난 사이’, ‘노동 예능’과 ‘힐링 토크쇼’ 사이에서 갈팡질팡
유재석의 ‘일로 만난 사이’, ‘노동 예능’과 ‘힐링 토크쇼’ 사이에서 갈팡질팡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08.28 0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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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일로 만난 사이' 공식 홈페이지]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tvN 예능 ‘일로 만난 사이(이하 일만사)’의 기획 의도는 제법 흥미롭다. 일로 만난 사이끼리 일손이 부족한 곳에 가서 하루 동안 일을 한다. 그리고 서로를 알아간다. 번 돈은 기부가 아닌 각자가 원하는 곳에 쓴다. ‘노동 힐링 프로젝트’라는 슬로건을 건 이 프로그램은 첫 회 시청률 4.9%(닐슨코리아 제공)를 기록하며 괜찮은 출발을 했다. 근데, 뭔가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일만사’는 프로그램의 원조 격인 ‘체험 삶의 현장’과는 결이 다르다. 사실관계로만 구분하자면 ‘일만사’는 예능이고, ‘체험 삶의 현장’은 시사·교양이다. 두 프로그램은 똑같이 ‘노동’이라는 소재를 다루지만 하나는 그것을 재미와 흥미 본위의 예능으로 녹여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감수성 증진을 위한 시사·교양으로 풀었다. ‘체험 삶의 현장’은 노동의 가치가 얼마나 무겁고 귀한 것인지를 노동 행위 그 자체에 천착하며 시청자들의 동의와 지지를 얻었다. EBS에서 방영 중인 '극한직업'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만사’는 노동을 ‘힐링 토크쇼’라는 다소 감상적인 형식으로 엮어내면서 프로그램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 한계는 ‘노동’이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린다는 데 있다. 우리는 지난 2014년에 방영된 tvN 예능 ‘오늘부터 출근’을 통해 그 한계가 가져다준 실패를 경험한 바 있다. ‘진짜 사나이’로 촉발된 소위 ‘체험 예능’의 흐름 안에서 당시 직장인 드라마로 큰 화제를 모은 ‘미생’과 결합한 이 프로그램은 노동 체험을 위해 회사로 들어갔다가 “놀러 왔습니까?”라는 프로그램 속 실제 직장인의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 이 말은 프로그램의 모순과 틈을 짚어낸 비판적 물음이기도 하다. 지난 2월, 연예인들의 취업 도전기를 그린 JTBC 예능 ‘해볼라고’ 역시 이와 비슷한 비판을 받았다. 연예인들이 일반 대중의 일터에서 ‘예능’을 할 때, 그 행위가 누군가에겐 실례가 될 수 있다. 돌려 말할 필요가 없다. 회사는 일하러 오는 곳이지 놀러 오는 곳이 아니다.

그렇다면 ‘일만사’는 어떤가. 우선 프로그램이 방영된 직후 포털 사이트를 장식한 기사 제목부터 살펴보자. “이효리, 유재석에게 돌직구 질문 최근에 키스해봤어?” “유재석X이효리, 국민 남매의 축의금 논쟁” “이효리, 오늘 ‘그날’ 예민한 상태 유재석 당황” “이상순, 다들 효리 무서워해, 심지어 장모님도 폭소”. 이처럼 일부 언론은 첫 회 게스트인 이효리·이상순 부부와 관련해 가십이 될 만한 키워드로 프로그램 리뷰를 쏟아냈다.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기사들이다. 누구의 잘못인가. 제작진의 안이한 연출인가 아니면 언론의 적극적인 오독인가.

‘놀고먹는’ 프로그램은 잘 놀고, 잘 먹어야 프로그램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그러니까 “놀면서 돈 번다”라는 말은 사실 칭찬에 가깝다. 여행을 가고, 음식을 만들고, 수다를 떠는 프로그램은 즐겁게 여행을 가고,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재미있게 수다를 떨어야만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본다. ‘삼시세끼’ 시리즈가 성공한 원인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루 세 번 지어먹는 ‘밥’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으로 ‘삼시세끼’에 다이내믹하거나 스펙터클한 재미가 없다는 비판은 건설적이지 못하다.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이 아니니까.

하지만 ‘일만사’는 노동을 주된 소재로 삼으면서 그것을 이상한 방식으로 소외시키는 측면이 있다. '노동'을 언급하지만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물론 유재석과 이효리·이상순 부부가 잡초를 제거하고, 녹차를 말리고, 박스를 접는 등의 노동 행위가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거기에 집중하지 않는다. 이는 유재석의 진행 방식과도 연관돼있다.

시시콜콜한 ASMR(청각·시각·촉각 등을 이용하여 뇌를 자극해서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것)에 집중하거나 유재석과 게스트 간의 다소 맥없는 토크 등은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를 흐리게 만든다. 물론 누군가에겐 흥미롭게 다가왔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굳이 예능의 작법으로 노동을 다루어야만 했을까. 유재석에게 “빨리 해 떠들지 말고.” “꼭 이렇게 셋이 모여서 토크를 해야 해?”라는 이효리의 촌철살인은 괜한 말이 아니다. 적어도 첫 회에서 유재석이 보여준 진행 방식은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와는 다소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의 저자 토마스 바셰크는 “고역(苦役)을, 노동에 대한 과한 몰두와 프로테스탄트적인 금욕을 끝내자. 일이 전부가 아니다”라며 “우리는 삶을 노동으로부터, 우리 영혼을 탈진으로부터 구해내야 한다. 이런 것이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요즘의 분위기다. 워커홀릭은 철 지난 인간형이다”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일터는 낭만적인 공간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힐링과 토크, 재미의 공간으로 전시할 당위성이 딱히 없다. 그런 성격의 공간을 굳이 배경으로 삼았다면, ‘노동’이라는 행위를 프로그램의 재미를 유발시키기 위한 여러 요소 중 하나로 취급하면 안 된다. 프로그램은 초두에 유재석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나, 유재석.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온몸이 근질근질한 사람. 누군가와 신나게 수다를 떨고, 누군가와 몸을 부대끼며 땀을 흘려야 에너지가 생기는 그런 사람. 그래서 생각했다. 건강하게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해보면 어떨까. 그렇게 얻은 에너지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려 한다.”

유재석은 정말 이런 이유로 프로그램을 시작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겐 방송 자체가 일이다. 일을 통해 일을 하려니 스텝이 꼬이는 건 당연하다. 물론 아직 첫 회만 방영됐기 때문에 이런 비판이 성급한 것일 수 있다. 다만 “(프로그램이) 그렇게 잘 될 것 같진 않은데”라는 이효리의 말이 허언이 되려면 ‘일만사’ 제작진은 다른 곁가지를 걷어내고 ‘노동’에 조금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노동 힐링 프로젝트’라는 슬로건에서 차라리 ‘노동’을 빼버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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