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헌씨의 사과가 5·18 진상 규명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노재헌씨의 사과가 5·18 진상 규명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08.2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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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씨의 아들 재헌씨가 지난 23일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무릎 꿇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노태우씨의 아들 노재헌씨가 광주를 찾았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이 묻힌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노씨의 사죄는 5·18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신군부 지도자의 직계가족으로서는 처음이다. 그는 묘지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5·18민주화운동 영령의 넋을 기렸다. 그리고 방명록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삼가 옷깃을 여미며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분들의 영령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리며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노태우씨는 지난 2011년 발간한 『노태우 회고록』에서 “5.18민주화운동이 유언비어 때문에 발생했다”라고 적어 ‘5·18 책임 회피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8년 후, 그는 자기 아들을 광주로 보냈고, 그 아들은 80년 5월의 광주를 난도질했던 아버지를 대신해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이에 일부 5·18 관련 단체는 “노씨가 아들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직접 나서야 한다”라며 “피해자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 사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2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조진태 5.18 기념재단 상임이사는 “노태우씨가 살아 있을 때 본인의 입으로 당시 5.18 학살 만행에 피해를 본 당사자들에게 용서를 비는 일이 노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5·18과 관련해) 노씨 본인의 행적은 물론이고 같이 주도해서 만행을 저지른 전두환씨 일당들의 행적을 국민들에게 공개해 5·18 관련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조 상임이사는 “노태우씨의 의사를 반영해서 노재헌씨가 진심 어린 손을 내민다면 우리 5·18 피해자는 물론이고 광주 시민들은 충분히 만날 용의가 있다고 본다”라며 “5·18을 가지고 대한민국이 얼마나 소모적인 논란을 벌이고 있나. 이 문제를 푸는 데 하나의 실마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태우씨가) 진심 어린 손을 내밀어준다면 만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씨의 이 같은 사죄는 여러 이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광주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씨를 비롯해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보수 인사들이 5·18과 관련해 반성은커녕 잇따른 망언과 흰소리를 ‘여전히’ 쏟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김순례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종북 좌파들이 판을 치며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 우리 세금을 축내고 있다”라고 발언해 당으로부터 '당원권 정지 3개월'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김 최고위원은 징계 시한이 끝나자마자 당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러한 전후모순이 바로 5·18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솔직한 태도였다.

전씨는 적반하장과 안하무인의 태도를 그대로 보였다. 지난 3월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광주지방법원에 선 전씨는 “혐의를 인정하느냐” “발포 명령 부인하느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거 왜 이래”라며 기자들을 신경질적으로 뿌리쳐 전 국민의 공분을 샀다. 반성과 사죄는 차치하고 오히려 기자들의 질문에 발끈하며 5·18 유족들의 가슴에 다시 한번 상처를 입힌 것이다.

이런 시점에 광주 학살의 또 다른 주범인 노씨의 사죄는 지지부진하고 있는 5·18 진상 규명에 어느 정도 동력을 제공해줄 수 있다. 5·18 진상 규명이 중요한 이유는 국가 권력에 의해 무참히 희생당한 국민들의 한을 푸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들의 권력 수호를 위해 수많은 양민을 학살한 군부 독재 정권의 극악무도함은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한다. 그래야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다.

『함께 보는 한국 근현대사』를 편찬한 역사학연구소는 “투쟁 과정에서 나타난 시민군의 ‘무장 투쟁’은 조직되지 못한 군중이 항쟁 지도부가 없는 상태에서 무자비한 국가 폭력에 맞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 마지막 방어 수단이었다”라며 “광주민중항쟁은 민족민중운동의 이념·동력·대상·방법 등 변혁하는 한국 사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민족민중운동이 질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역사적 의의가 있다”라고 설명한다.

노씨의 사죄가 혐오와 왜곡으로 점철된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진실을 밝히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노씨는 남은 인생동안 5·18 진상을 규명하는 데 참회자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노씨가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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