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북한엔 ‘웃고’ 일본엔 ‘욱’?... ‘균형’ 필요한 한국 외교
미국·북한엔 ‘웃고’ 일본엔 ‘욱’?... ‘균형’ 필요한 한국 외교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8.1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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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청와대.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미국 어느 도시에서 총으로 무장한 인질범들과 경찰이 대치하는 상황. 한 세대 전만 해도 경찰은 “너희는 포위됐다. 투항하고 나와라”라고 항복을 권유한 후 여의치 않으면 특공대를 투입해 무력진압을 시도했겠지만, 그와 달리 이번에는 전문 협상팀이 범인과 대화에 나선다. 당시 협상팀에 요구된 내용은 세 가지. ▲ 예의를 갖춰라 ▲ 인질범 이야기를 경청하라 ▲ 그들의 시각에 관심을 보이고 인정하라. 협상팀은 인질범의 도발적인 언행에 참을성을 갖고 침착하게 대하며 인질범의 체면을 세워주는 데 신경 쓰면서 결국 설득에 성공한다. 인질범은 항복했고, 잡혀있던 인질들은 모두 무사히 풀려났다. 세계적인 협상 전문가 윌리엄 유리가 책 『하버드는 어떻게 최고의 협상을 하는가』에 소개한 사례다. 그는 “인질 협상은 공격하는 사람을 받아들이거나 부정이나 해악을 무시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보다 그들의 잘못된 행동 앞에서도 그들의 인간성을 존중하라는 의미”라며 “나를 거부하는 사람을 인정하는 것은 그의 요구조건에 ‘예스’라고 말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설령 ‘노’를 의미할 때도, 그 사람의 본래 존엄성을 인지하며 호의적인 매너를 보여주라는 의미”라고 말한다.

이런 모습은 최근 북한을 대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문 대통령은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쏘아대는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며 ‘탄도미사일’이라는 일각의 지적에는 ‘단거리 미사일’로 일축하고 ‘과격한 대남비방’은 ‘북한 특유의 호전적 말투’로 긍정 해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질범을 대하듯 존중하는 자세로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는 모양새지만, 안타깝게도 성과 없이 북한의 대남 비방 수위만 높아지고 있다.

11일 북한은 외교성 명의의 담화에서 “(한미연합 ) 군사연습을 걷어치우든지, 변명이나 해명이라도 성의껏 하기 전에는 북남 사이의 접촉 자체가 어렵다. 앞으로 좋은 기류가 생겨 우리가 대화에 나간다고 해도 이런 대화는 조미(북·미) 사이에 열리는 것이지 북남 대화는 아니라는 것을 똑바로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북미 정상 회담의 다리를 놓은 남한에 대한 고마움은 온데간데없고, ‘통미봉남’(남한을 배제하고 미국과만 대화하려는 기조 )의 모습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상대를 무시하는 북한의 담화에 불쾌감을 느낀 국민이 적지 않으나 이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2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 담화문은 우리 정부와 결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며 “담화문은 진의가 중요하다. 결국 한미연합훈련 종료 후 비핵화 실무협상에 나서겠다는 것”이라고 긍정적인 해석을 전했다.

사실 국민에게 불쾌감을 전하는 것은 비단 북한만이 아니다. 그간 이어왔던 동맹가치보다 ‘물질 가치’를 더 중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에 대한 인식도 다수 국민의 불쾌감을 자아낸다. 지난 9일(현지시각) 재선 캠페인 모금 행사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임대료를 받으러 다닌 일화를 소개하면서 “브루클린의 임대아파트에서 114.13달러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달러를 받는 게 더 쉬웠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주한미군 주둔비용 증액을 얻어낸 자신의 능력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관점에 따라 한국은 ‘안보’를 빌미 삼으면 돈 뜯어내기 좋은 나라로 비쳐져 논란을 더하고 있다.

어찌 보면 북한과 미국을 대하는 문재인 정권의 태도는 굉장히 신사적이다. 경거망동하거나 일희일비하지 않으면서 ‘체통’을 지키는 모습이다. 하지만 경제 보복에 나선 일본을 향해서는 선동에 가까운 감성적 접근의 최선두에 청와대가 자리한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죽창가’(항일의병항쟁의 중심이었던 동학농민운동 세력을 기리는 노래 )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며 항일 여론을 조성하거나, “정부 비판하면 친일파” 등의 이분법적 사고를 드러내며 논란을 일으켰다. 때로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성인군자였다가, 때로는 반대의견을 허용치 않는 강경한 청와대의 모습에 적잖은 국민이 불안함을 표하며 ‘균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협상가 왕하이산은 책 『하버드 협상 수업』에서 “상호 이익은 협상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주요 원칙이자 출발점이다. 협상가는 상호 이익을 전제로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최상의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북한, 상호 필요에 의한 동맹을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로 여기며 ‘안보 청구권’을 제시하는 미국, 역사문제가 걸림돌이 돼 사사건건 충돌하는 일본을 대하는 한국의 균형점 찾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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