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된 ‘훈민정음 상주본’ 찾습니다”… 문화재 인질 몸값 1,000억원
“납치된 ‘훈민정음 상주본’ 찾습니다”… 문화재 인질 몸값 1,000억원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7.23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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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과 이를 실소유하고 있는 배익기씨. [사진=연합뉴스tv]
훈민정음 해례본과 이를 실소유하고 있는 배익기씨. [사진=연합뉴스tv]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아기를 반으로 갈라 두 여인에게 주라는 솔로몬의 판결은 희대의 명판결로 손꼽힌다. 증인도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한 아기를 두고 두 여인이 모두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상황. ‘지혜의 왕’인 이스라엘 왕국 제3대 왕 솔로몬은 진짜 어미라면 양육권을 갖지 못한다 할지라도 아이의 죽음만을 막으리라는 ‘모성애’를 이용해 진짜 엄마를 가려낸다.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사건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대법원이 배익기씨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훈민정음 해례본(상주본)의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상주본의 소재 파악이 안돼 회수가 불가능한 상황. 문화재청은 “(배씨에 대해 ) 압수수색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앞서 두 차례 압수수색이 소득 없이 끝났다는 점으로 미뤄 볼 때 회수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대왕이 1446년 창제한 우리 글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를 기록한 책으로 그간 국내에 한권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1943년 이용준이란 자가 아내 집안 서고에 있던 책(훈민정음 해례본 )을 당시 거부였던 간송 전형필에게 팔아넘기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애초에 이용준이 제시한 금액은 1,000원이었으나, 전형필은 1만원(당시 집 열채 값 )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적 가치가 큰 해례본을 푼돈에 매입할 수 없다는 전형필의 의도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해당 해례본은 어디까지나 이용준이 처갓집 물건을 훔쳐 내다 판 ‘장물’이었다. 이용준 처가인 광산 김씨 가문에서 문제 삼으면 법정다툼으로 번질 수 있는 일이었지만, 김씨 가문은 해례본에 대한 송사를 ‘조상을 욕보이는 일’이라 여겨 과감히 소유권을 포기했다. 책 『간송 전형필』에 따르면 김씨 가문은 “우리 집안 책이지만 간송이 진가를 알아주기 전에는 귀한 책인지 몰랐다. 오히려 해례본을 세상에 알리고 잘 보전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해당 해례본은 간송 전형필의 호를 따, 간송본이라 칭하고 현재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간송미술관에 보관돼 있다.

이렇듯 첫 간송본의 등장은 미담으로 수식됐지만, 경북 상주에서 2008년 발견된 두 번째 ‘훈민정음 해례본(상주본)의 등장은 법정다툼을 불렀다. 배씨는 그해 7월 “집수리를 위해 짐 정리를 하던 중 발견했다”며 상주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지역의 골동품 판매업자 조모씨가 “배씨가 (자신의 집에서 상주본을 ) 훔쳐갔다”고 주장하면서 소유권 소송으로 번졌다. 조씨는 배씨를 상대로 민·형사 재판을 모두 제기했는데, 형사재판 재판부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배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민사 재판부는 ‘조씨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엇갈린 판결을 내렸다. 민사 재판에서 이긴 조씨는 상주본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상주본을 국가에 기부하겠다’고 밝혔으나, 배씨는 형사 재판 승소를 이유로 상주본을 내놓지 않았다. 그렇게 법의 판결이 엇갈리던 중 최근 대법원이 “절도가 무죄라도 배씨의 소유권을 인정한 건 아니다”라고 판단하면서 상주본의 소유권은 국가로 돌아가게 됐다. 하지만 배씨는 “주운 돈도 5분의 1은 준다. 나는 10분의 1은 받아야겠다”면서 어느 대학 교수의 상주본 감정가 1조원을 근거로 1,000억원을 요구하고 있다.

해당 상황에 대중의 분노는 들끓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납치하고 세금으로 몸값을 지불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벌금을 부과해서라도 받아내야 한다” 등 강경반응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배씨는 “이미 (상주본 일부가 불에 타 ) 꼴이 말이 아니라”는 협박성 발언과 함께 “나를 쪼면 쫄수록 그 부분(국가 귀속 )은 점점 멀어진다”고 입장을 밝혔다.

앞서 “훈민정음 해례본은 사찰 소유 복장 유물(불상 속에 있는 유물 )로 내가 수중에 넣은 후 조씨에게 팔았다”는 도굴꾼 서모씨의 증언. ‘상주본은 국가 소유’라는 대법원의 판결 등 사건 정황과 재판 결과가 “상주본은 국가 소유”라고 말하고 있지만, 배씨의 ‘모르쇠’에 상주본을 돌려받을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법상 스님은 책 『부처님 말씀과 마음 공부』에서 “탐욕은 괴로움이다. 탐욕을 채우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 또한 결국 고통이 되고 만다. 탐욕을 채우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탐욕은 커진다. 많은 이들이 탐욕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고, 탐욕을 채우기 위해 온갖 악행과 기만을 서슴지 않는다”며 “탐욕이 없으면 괴로움도 없다. 탐욕을 알아차리고 지켜보면 탐욕에 대한 지혜가 생기고 지혜의 빛은 곧 탐욕을 사랑으로 불태운다”고 말한다.

간송본보다 보존상태가 좋고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상주본의 가치로 인해 배씨의 ‘모르쇠’를 언제까지 방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세금으로 몸값을 지불하고 찾아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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