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최고?... 과로사 내몰리는 집배원의 이유 있는 파업
공무원이 최고?... 과로사 내몰리는 집배원의 이유 있는 파업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7.07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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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인근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동조합원들이 정규직 증원 및 토요 근무 폐지 등을 촉구하며 삭발식을 마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6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인근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동조합원들이 정규직 증원 및 토요 근무 폐지 등을 촉구하며 삭발식을 마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해고될 염려 없이 정년을 바라보며 노동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복지를 누리는 직업. 노동법에 명시된 근로자의 권한이 최대한 실현되는 직업. 출산 후 경력단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 주 52시간 근무시간을 그 어느 노동자보다 철저하게 보장받는 직업. 바로 공무원이다. 큰돈은 못 벌어도 저녁이 있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공무원은 청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현실적인 직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 중에서도 근무시간이 주 52시간을 훌쩍 넘어서고, 매일 사고 위험에 노출되며, 끼니조차 챙기기 어려운 공무원이 있다. 바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 우정직군 공무원인 집배원이다.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기획추진단’에 따르면 집배원(무기계약직 포함 )의 연간 노동시간은 하루 평균 11시간 6분, 연평균 2,745시간에 달한다. 이는 임금노동자 연평균 노동시간(2,052시간 )보다 693시간 많은 수치다.

사실 집배원이 주로 다뤘던 우편 물량은 지속해서 감소하는 추세다. 휴대폰, 스마트 기기가 보편화되면서 서신 왕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달 시 수취인의 서명을 받아야하는 ‘등기소포’의 경우 지난 10년간 2배(2008년 1억2,672건, 2018년 2억7,130만4,000건 ) 이상 증가했다. 우편함에 꽂아두기만 하면 됐던 일반우편에 비해 가가호호 방문해 수취인 서명까지 받아야 하는 등기소포가 늘어나면서 집배원의 업무 강도가 높아진 것이다.

또 집배원 중 어느 누가 병가나 휴가로 자리를 비우게 되면 해당 구역을 동료 집배원이 나눠서 배달하는 ‘겸배(兼配)’문화가 존재해 자리를 비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동료에게 짐이 되느니 내가 조금 더 고생하지 뭐’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티다 끝내 불미스런 결말을 맞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사망한 집배원은 166명이다. 지난해에는 25명, 올해는 아홉명이 과로로 세상을 떠났다. 매일 생사를 넘나드는 소방관 산재율의 1.5배 수준이다. 지난해 7월에는 경기도 안산에서 21년차 집배원이 ‘이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하라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신이 근무하던 우체국 앞에서 분신해 숨지는 일도 일어났다. 2011년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집배원은 28명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 지난해 우정노사협의회는 2019년 7월 1일부터 토요 집배를 폐지하고 집배원 2,000명을 정규직으로 증원할 것을 결의했다. 그 일환으로 올해 예산 논의 과정에서 집배원 1,000명 증원을 골자로 한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돼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까지 통과했지만, 최종 결정을 앞두고 국회의원들이 밀실에서 예산을 거래한다고 해 일명 ‘깜깜이 심사’로 불리는 소소위원회에서 흐지부지 처리됐다.

집배원 1,000명을 증원하는 데 필요한 돈은 약 430억원으로 우정사업 수익을 투입하면 충분히 감당이 가능하다. 2017년 우정사업 전체(우편, 보험, 금융 ) 수익은 5,00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우정 행정이 특별회계로 편성돼 정부가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도록 돼 있어, “수익은 국가가 가져가고, 지출은 나몰라라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재 우정사업본부는 노조 요구의 1/4 가량인 500명을 연내 증원하는 안을 제시해 노조와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결국 우체국 노동조합(한국노총 소속 전국우정노조·민주노총 소속 전국우편지부 )은 노조원 90% 이상의 찬성을 얻어 파업을 선언했다. 노사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오는 6일 135년 우정사업 역사에 첫 파업이 일어날 예정이다.

사회학자 김영선 박사는 책 『과로 사회』에서 “장시간 노동은 우리의 삶 전체를 예속하는 복잡한 원인들이 얽히고설킨 통치의 산물”이라며 “‘바쁜 게 좋은 거야’라는 자조 섞인 위안,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자’는 위기의식, ‘그래도 늦게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야 상사 눈밖에 안 나지’라는 통념, ‘젊을 때 일을 안 하면 나중에는 일할 수 없다. 야근은 축복이다’라는 왜곡된 신념이 뒤섞이면서, ‘어쩔 수 없지’라는 푸념만 늘어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연간 수십명이 과로사하는 집배원들. 이들의 죽음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두고두고 곱씹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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