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대한민국에게 보낸 편지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대한민국에게 보낸 편지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6.11 15: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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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희호 여사의 빈소. [사진= 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이희호 여사가 10일 밤 11시 37분 소천했다. 향년 97세. 그동안 노환으로 수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는데, 앓고 있던 간암이 악화돼 올해 3월부터 입원생활을 했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비록 이 여사는 떠났으나, 그가 남긴 발자취가 큰 울림을 일으켜 사회각계각층에서 애도의 물결이 퍼지고 있다. 

핀란드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이 여사의 타계 소식이 알려진 10일 저녁 SNS를 통해 “여사님은 김대중 대통령의 배우자, 영부인이기 이전에 1세대 여성운동가”라며 “민주화운동에 함께 하셨을 뿐 아니라, 김대중 정부의 여성부 설치에도 많은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또한 “여사님은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 하실 정도로 시민 편이셨고, 정치인 김대중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만들고 지켜주신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신앙인, 민주주의자였다”고 덧붙였다.

이희호 여사의 타계 소식에 정치권도 정파를 떠나 일제히 애도를 표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11일 논평을 내고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별을 잃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의 거목이었던 여성 지도자 이희호 여사의 삶을 깊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추모한다”고 밝혔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 여사의 삶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현대사로, 독재정권의 서슬 퍼런 탄압도 죽음을 넘나드는 고난도 이 땅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향한 두 분의 굳은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고 덧붙였다. 

자유한국당 민경욱 대변인도 이날 논평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반려자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이희호 여사는 민주주의를 위해 한평생 살아왔다”며 “고인께서 민주주의, 여성 그리고 장애인 인권운동을 위해 평생 헌신했던 열정과 숭고한 뜻을 기리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정치인 김대중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만들고 지켰다” “김대중은 이희호로부터 태어났다”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주의의 거목” “김 전 대통령의 반려자이자 정치적 동지”라는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희호 여사가 고난의 시절 김 전 대통령에게 보냈던 서신들을 모은 책 『옥중서신 2』에서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군사독재를 물리치기 위한 민주화투쟁의 선봉에 섰기에 갖은 박해를 당했다. 5.16군사쿠데타로 민주정부를 무너뜨리고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1년 4월에 실시한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유효투표의 46%를 얻은 것에 놀라 그해 12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듬해 1972년 10월 17일 전국에 비상계엄령과 함께 ‘유신’을 선포한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유신’ 선포를 강력히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과 일본을 왕래하며 망명생활을 한다. 강도 높은 반독재·반유신 투쟁에 박정희 정권은 1973년 8월 8일 중앙정보부를 동원해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김 전 대통령을 납치해 살해하려다 미국의 개입으로 실패한다. 

이 여사는 함께했던 민주인사들이 고문을 당하는 암울한 상황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남편에게 “현재로는 당신만이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어느 누구도 바른말을 하지 못 하고 가슴 답답해하고 있으니까요. 정부에서는 당신이 외국서 성명 내는 것과 국제적 여론을 제일 두려워한다 합니다”라며 “나와 아이들은 당신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하루라도 빨리 오셨으면 하지만, 당신 자신과 나라를 위해서는 외국에 더 머물러 계시면서 사태를 주시하심이 좋겠어요. 당신 몸이 건강하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불의를 물리칠 수 있고 국민을 위해 투쟁도 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용기를 실어줬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은 1976년 윤보선, 함석헌 등 각계 지도층과 함께 긴급조치 철폐, 민주인사 석방, 언론·출판·집회의 자유, 의회정치 회복, 대통령 직선제, 사법권의 독립 등을 요구하는 3.1민주구국선언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1977년 진주교도소에 수감된다. 이때도 이희호 여사는 남편을 안심시키고, 남편이 의지를 굳건히 할 수 있도록 힘을 썼다. 

이 여사는 서신을 통해 “만났을 때도 말씀드렸듯이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그리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수난을 받아들이시고 기도생활로 소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우리들 가족들도 결코 실망은 아니합니다”라며 “오히려 영광스러운 고난의 대열을 따라 묵묵히 행진하고 있는 엄숙한 시기인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모든 고난은 예수님의 부활을 약속해주고 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괴롭고 아프고 눈물겨우나 정신적으로는 얼마나 숭고하고 고결합니까. 모든 교도관들이 당신에게는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로 생각하세요”라고 적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이 여사는 서신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로 시작하는 구약성서 이사야 41장 10절 내용을 덧붙였다.  

1980년 부부의 고난은 최고조에 달한다. 그해 7월 4일 전두환과 노태우를 필두로 한 신군부세력이 학원소요사태 및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세력으로 김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당시 유력한 정치인이었던 김 전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한 거짓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반공법, 계엄법, 외환관리법 위반 등으로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에서 모두 사형이 선고돼 청주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한다. 

이에 이 여사는 어떻게든 남편의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해 1980년 11월 21일부터 1982년 12월 16일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총 649통의 편지를 보낸다. 이 중 1980년 11월 21일 쓴 편지에는 “나는 당신의 고통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지만 나의 환경은 그 큰 고통을 덜어드리기에는 너무도 어려워, 다만 묵묵히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당신께 미치기를 바랄 뿐입니다. 당신이나 나나 일생을 통해 이렇게 심각할 때는 없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넘겼어도 그래도 오늘과 같지는 않았을 것입니다”라며 “나는 확신합니다. 지금 당하는 고통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 또한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그 사랑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심경에 이르게 됩니다. 나는 거짓 없이 이 아픈 체험을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로 받고 감사하고 있어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당신을 떼어놓지 못할 것입니다. (중략)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만일 당신이 이렇게 큰 어려움에 처해있지 않았다면 누가 그렇게까지 어려운 기도를 드리고 있겠어요. 그리고 많은 수의 형제가 당신을 기억하고 염려를 해주겠어요”라고 적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대통령 대변인과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을 지냈으며, 김대중평화센터 비서실장으로서 활동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이라고 불리는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11일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큰 별이 가셨고 어머님이 가신 것처럼 허전하기만 하다”며 “(이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의 영원한 인생 반려자이자 정치적 동지다. 김대중은 이희호로부터 태어났다고 할 정도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여러 가지 업적을 끼치신 분”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옳은 길, 민주화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채찍질을 했고, 하나도 일탈하지 않도록 지켜보고 지켜준 그런 분이어서 험난한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고 평했다. 이희호 여사, 우리나라 민주화의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큰 허전함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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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2019-09-15 22:09:46
존경합니다.
이 세상에 두분다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
참 슬프지만 하늘에서도 당신께서 그토록 사랑하는
이나라를 항상 지켜보고 계시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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