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사회 · 문화적 현상들이 사회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본 칼럼은 ‘책으로 세상을 비평하는’ 독서신문이 형사전문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책에서 얻기 힘들었던 법률, 판례, 사례 등의 법률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달해 사회 · 문화적 소양 향상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
이전보다 성범죄 피해를 입었음을 적극적으로 신고하면서 가해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올해 초의 ‘미투 운동’에 용기를 얻었던 것도 있을 것이며, 어떠한 행동이 단순한 ‘실수’가 아닌 엄연한 ‘범죄’에 해당한다는 점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전반적으로 확립되어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범죄 신고가 늘어가는 만큼, 그 ‘성범죄 무고’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성범죄로 무고당한 남성이 치러야 하는 대가에 비하여 무고한 사람에 대한 처벌은 너무 가볍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내용의 국민청원이 올라와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성범죄 무고에 대해서는 집행유예를 선고하지 못하게 하자거나, 성범죄 사건에서 무혐의처분을 받게 되는 경우 국가배상 제도를 마련하자는 것들이다.
실제로 남녀간의 문제에 있어서 성범죄로 무고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 남자친구에게 복수하고자 남자친구를 강간죄로 무고하였던 여성 A씨는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하였다.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재력을 속였고, 돈을 빌려가 이를 갚지 않자 홧김에 모텔에서 강간을 당했다면서 남자친구를 경찰에 고소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억울하게 성범죄 무고죄 혐의를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직장 동료와 술을 마신 뒤 기억이 끊긴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B씨는 CCTV 화면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이 없었다는 이유로 성폭행은 무혐의 처분되고, 오히려 무고로 인지되어 기소되기도 하였다. B씨는 결국 무죄 판결을 받기는 하였지만, 오랜 시간 마음을 졸여야만 했다.
성폭행이나 성추행으로 고소를 하려고 하는 경우 가장 망설이게 되는 이유는 혹시라도 무고죄로 처벌받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실제로 여성가족부의 전국 성폭력 실태 조사에 의하면, 성범죄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신고하는 비율은 2013년 1.1%, 2016년 1.9%에 불과했다.
성폭력 무고가 전체 무고 사건의 40%에 달한다는 잘못된 통계도 성범죄 고소를 막는 걸림돌이 된다.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는 무고 사건에서 성폭력 무고 관련 통계를 따로 집계하지 않고 있다. 위와 같은 수치는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성폭력 범죄의 비율이고, 고소한 사실이 증거가 부족하여 무혐의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무고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성범죄 가해자가 무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운 만큼, 성범죄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주장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때문에 성폭력처벌법 등의 성범죄 관련 법률은 다른 형사피해자와는 다르게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형사절차상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방어하고 법률적 조력을 보장하기 위하여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를 부여하고 있기도 한다.
성범죄 무고가 문제가 된다고 하여 막연히 무고죄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해답이 될 수 없다. 무고하게 성범죄 혐의를 받는 사람이 없도록, 성범죄 피해를 입고도 가해자가 활개치는 것을 바라만 봐야 하는 사람이 없도록, 수사와 재판에 있어 더욱 면밀하고 이성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예단 없이 사건을 공평하게 바라보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어야 억울한 범죄자도, 억울한 무고자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박재현 더앤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경찰대학 법학과 졸업
-사법연수원 수료
-前 삼성그룹 변호사
-前 송파경찰서 법률상담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