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32년간 기자이자 워킹맘으로 살아왔던 저자가 오래토록 갈망했던 '노는 삶'을 그린 책이다. 마당에서 식물을 가꾸는 일, 5만원짜리 중고재봉틀로 원피스 만들기, 마당에 떨어진 풋감으로 감물염색 들이기 등이 저자에게는 좋은 놀이거리다. 제철 식재료로 삼시세끼를 간소하게 챙겨 먹고 시골 숲길과 같은 정원을 가꾸며 사는 일상이 경쾌하게 펼쳐진다.
기자 생활을 그만 둔 저자는 단돈 5만원짜리 재봉틀을 구입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시간이 남아돌자 옷을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창신동공작소 그리고 인터넷 강의를 통해 실 꿰는 법부터 파우치와 에코백 만드는 법을 배웠다. 5만원짜리 재봉틀을 매우 요긴했다. 저자는 "기본형 재봉틀도 노루발과 바늘만 바꿔주면 어떤 천도 바느질 할 수 있다. (모든 재봉틀은) 단순하냐 복잡하냐의 차이만 있을 뿐 부속품은 동일하다"며 "가끔 재봉틀을 돌려 내가 쓸 물건을 만들고, 대학 동창들에게는 에코백, 좋아하는 언니에게는 모자를 만들어줬다. 역시 5만원짜리 재봉틀을 사길 잘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선물받은 식물이 화려하게 꽃 필때면 선물해준 이에게 꼭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궁금해졌다. 자신이 선물한 식물을 받은 사람들은 왜 아무 소식이 없을까? 데이지와 은방울꽃을 가져간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네는 내가 준 꽃 없어?" 언니는 "없다"고 답했다. 그때 저자는 깨달았다. 사람들은 꽃뿐 아니라 수많은 깨달음과 감정을 주고 받으며 살지만, 그것들이 자신에게 의미 있고 아름다운 것으로 자랐을 때에야 비로소 그걸 전해준 이에게 고맙다는 것. 받은 것을 살릴 줄 알아야 고마운 줄도 안다는 깨달음 속에서 잘 키워낸 자신을 향해서도 고마움을 전한다.
사진으로 미리 접한 유적지는 직접 만났을 때 감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프랑스 몽생미셸은 달랐다. 프랑스 정부의 공식 여행 가이드 친구와 함께 찾은 몽생미셸은 섬 전체가 오래된 섬으로 보이는, 오감이 약동하는 360도의 살아있는 공간이었다. 사진에 담을 수 없는 분명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이후 프랑스 출신의 성녀 소화 데레사의 고향인 리지외로 가는 길에 본 노을도 장관이었다. 하늘에 길게 이어진 노을은 바다쪽으로 갈수록 노을은 진한 분홍색을 띠며 바다까지 진분홍색으로 물들였다. 난생 처음보는 노을이었다.
저자는 뒷마당에 양귀비를 재배한다. 핏빛을 자아내는 양귀비 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그는 "(양귀비) 꽃잎은 공단처럼 매끄럽고 도타운 질감이 느껴지며 은은한 향기도 난다"며 "식물마다 다 예쁘기가 어려운데 양귀비는 어디를 봐도 예쁘다. 매우 예쁘다"라고 말한다. 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정해진 수만 기르며 아쉬워하는 저자는 "적어도 원예 선진국(영국)이 하는 규정을 (우리나라가) 따르는 일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며 "원예를 하는 사람은 오래 살고 싶어서 마약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걸 내가 장담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나머지 시간은 놀 것』
서화숙 지음·사진 | 나무를심는사람들 펴냄|256쪽|1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