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훈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해 왔는가? 『훈의 시대』
[리뷰] 훈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해 왔는가? 『훈의 시대』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8.12.0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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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가훈, 교훈, 사훈… 우리는 가정에서부터 학교, 군대, 회사에 이르기까지 '~해야 한다'는 지침을 담은 '훈'을 접하며 성장한다. '거짓말을 하면 안돼'라는 부모님의 '훈계'에서부터 '정직한 제품 생산'이라는 회사의 가치가 담긴 '사훈'까지 수많은 훈의 영향 속에서 살아간다. 

저자는 그런 훈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피력한다. 그가 생각하는 훈은 집단에 소속된 개인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의 언어이며, 지배계급이 생산, 해석, 유통하는 권력의 언어이고, 한 시대의 욕망이 집약된 욕망의 언어다. 

가장 먼저 도마에 오른 건 학교가 지닌 교훈과 교가다. 저자는 '여자고등학교'(여교)를 지칭하며 "공부하는 여성들에게 '여자'라는 명칭을 굳이 부여하는 지금의 제도는 분명히 그들을 그 공간의 주변부로 내몰게 된다.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할 학교에서부터 여성은 따로 구획되고 이것은 한 존재를 외롭고 위축된 몸으로 만들어낸다"며 "여기에 익숙해지고 나면, 사유의 크기도 그에 따라 줄어들어 버리고 만다. 자신을 소중히 여길 수 없게 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어 전국 149개 공립여고와 168개 공립남고의 교훈을 조사한 저자는 "여고 교훈에는 '순결' '정숙' '예절', 남고에는 '단결' '용기' '개척' 등의 단어가 가장 많이 포함됐다"며 "여고의 것이 정적이고 과거 지향적이라면 남고의 것은 역동적이고 미래 지향적이다. 교훈은 이러한 단어들을 명시하고 박제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고, 교가는 이것을 학생들에게 직접 발화하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회사의 훈도 거론한다. 저자는 대리운전을 하던 시기 용변을 보기 위해 들어갔던 건물의 벽 한켠에서 '우리는 남들보다 두 배 더 열심히 일한다' '우리는 남들보다 두 배 더 빨리 출근한다'라는 사훈을 발견하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면서 "회사는 개인을 통제하고 스스로 검열하게 하는 가장 간편하고 원초적인 방식이 그 공간의 언어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며 "사원, 대리, 차장, 부장이 아닌 '나'라는 한 개인으로서 회사에 존재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 공간을 규정한 언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권면했다. 

다만 훈 자체를 매도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사훈이 수용자에게 직관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그를 존중하고 있다는 인식까지 전달할 수 있따면 그건 '좋은 훈'이 될 것"이라며 배달의 민족의 사훈을 소개한다. 배달의 민족의 사훈은 ▲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 ▲ 업무는 수직적, 인간 관계는 수평적 ▲ 개발자가 개발만 잘하고,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잘하면 회사는 망한다 ▲ 책임은 실행한 사람이 아닌 결정한 사람이 진다 등이다. 저자는 "이것을 좋다 나쁘다 판단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앞서 살펴본 것들보다는 '두 배 이상' 세련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는 훈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잘못된 훈 앞에서 절망감을 느끼는 젊은이들에게 저자는 "언젠가는 여러분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 자리에 오를 날이 온다"며 "그러면 큰 용기를 내거나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그거… 한번 바꿔볼까?"하는 말 한마디로 변화를 추동해 낼 수 있다"고 조언한다. 


『훈의 시대』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펴냄|246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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