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체 접촉이 없는 강제추행이 가능할까?
[기고] 신체 접촉이 없는 강제추행이 가능할까?
  • 박재현
  • 승인 2018.12.04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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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사회 · 문화적 현상들이 사회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본 칼럼은 ‘책으로 세상을 비평하는’ 독서신문이 형사전문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책에서 얻기 힘들었던 법률, 판례, 사례 등의 법률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달해 사회 · 문화적 소양 향상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추행(醜行)’은 더럽고 지저분한 행동을 말한다. 나아가 이는 강간에 유사한 행동으로까지 사용될 수 있다고 한다. 법적인 관점에서는,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추행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제로 ‘추행’한 경우에 성립한다. 이러한 추행의 행위태양은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킬 수 있는 행위라면 강제추행죄가 성립하는 데에는 의문이 없다. 예컨대, 가슴 등 민감한 부위에 피해자의 동의 없이 신체 접촉을 하였다면 이를 추행으로 평가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이 이루어진다면 대부분의 경우에 강제추행이 인정된다. 형법은 폭행 또는 협박이라는 수단을 요구하고 있지만 예컨대 길거리에서 누군가를 갑자기 껴안고 도망간다거나 하는 ‘기습추행’의 경우도 강제추행죄로 처벌될 수 있는 것이다. ‘껴안는다’라는 유형력의 행사인 폭행행위 자체를 추행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통은 ‘강제추행 = 신체 접촉’이라는 공식을 벗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신체적인 접촉 없이 피해자 앞에서 음란한 행동을 한다면 공연음란죄가 문제될 것이고, 채팅으로 음란한 대화를 한다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의 통신매체이용음란죄가 문제될 것이다.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 없다고 하여도, 예컨대 도구를 사용하여 상대방의 신체에 접촉하여 추행을 하였다면 이 또한 강제추행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이 신체 접촉이 전혀 없는 경우는 어떨까.

A씨는 스마트폰 채팅 앱을 통해 알게 된 여성들을 상대로 연락을 해 오다가, 서로 신체의 은밀한 부분을 찍어 보내주기도 하는 등의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A씨는 여성들에게 점점 더 수위가 높은 사진을 요구하였으며, 이를 보내지 않으면 그동안 보관하고 있던 사진들을 유포하겠다고 여성들을 협박하였다. 이에 여성들은 겁을 먹고, 음란한 행위를 하는 사진이나 영상을 직접 찍은 뒤 이를 A씨에게 보내 주었다.

이와 같은 경우 A씨는 여성들을 추행한 것으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단순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으로 보고 강요죄로 처벌되는 것일까.

2심까지는 A씨에게 강제추행죄를 인정하지 않고, 강요죄만이 인정된다고 보았다. 강제추행죄가 반드시 신체적 접촉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A씨의 행위가 강제추행에 이른 정도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피해자를 협박해 피해자의 음란 사진 등을 받는 행위, 신체 접촉이 없어도 강제추행 처벌

이는 ‘피해자들을 도구로 삼아 피해자의 신체를 이용해’ 피해자들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고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게 하는 강제추행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는 타인을 도구로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범죄를 실행하는 ‘간접정범(間接正犯)’으로서 강제추행죄를 범한 것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자기가 자신의 신체를 만지는 행위는 강제추행으로 처벌되지 않으므로, 피해자들은 A씨의 협박에 의해 피해자들의 신체를 만지는 도구로써 이용되었던 것이라는 취지이다.

성범죄를 포함한 여러 형사범죄는 전형적인 유형으로만 범해지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법률 규정의 문언만으로는 그러한 모든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는 ‘입법의 공백’이 생길 여지도 있다. 이 사건은 강제추행죄가 사람의 성적 자유나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죄라는 입법의 취지를 바탕으로, 자칫 생길수도 있었던 입법의 공백을 법률해석을 통하여 적절하게 메운 사안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박재현 더앤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경찰대학 법학과 졸업
-사법연수원 수료
-前 삼성그룹 변호사
-前 송파경찰서 법률상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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