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불운의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과 윤동주, 백석, 정지용 등 유명 시인의 작품이 만났다. 명화와 명시가 어우려져 쌀쌀한 가을바람이 부는 10월의 어느 날들을 노래한다.
쓸쓸한 길 -백석-
거적장사 하나 산뒷옆 비탈을 오른다
아-따르는 사람도 없이 쓸쓸한 쓸쓸한 길이다
산가마귀만 울며 날고
도적갠가 개 하나 어정어정 따러간다
이스라친전이 드나 머루전이 드나
수리취 땅버들의 하이얀 복이 서러웁다
뚜물같이 흐린 날 동풍이 설렌다
절망 -백석-
북관(北關)에 계집은 튼튼하다
북관(北關)에 계집은 아름답다
아름답고 튼튼한 계집은 있어서
흰 저고리에 붉은 길동을 달어
검정치마에 받쳐입은 것은
나의 꼭 하나 즐거운 꿈이였드니
어늬 아츰 계집은
머리에 무거운 동이를 이고
손에 어린것의 손을 끌고
가펴러운 언덕길을
숨이 차서 올라갔다
나는 한종일 서러웠다
밤 -윤동주-
외양간 당나귀
아-ㅇ 외마디 울음 울고
당나귀 소리에 으-아 아 애기 소스라쳐 깨고,
등잔에 불을 다오.
아버지는 당나귀에게
짚은 한 키 담아 주고,
어머니는 애기에게
젖을 한 모급 먹이고,
밤은 다시 고요히 잠드오.
가을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잎들이 떨어집니다. 먼 곳에서 잎들이 떨어집니다.
저 먼 하늘의 정원이 시들어버린 듯
부정하는 몸짓으로 잎들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오늘밤 무거운 지구가 떨어집니다.
다른 별들에서 떨어져 홀로 외롭게.
우리들 모두가 떨어집니다. 이 손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보세요 다른 것들을, 모두가 떨어집니다.
그러나 저기 누군가가 있어,
그의 두 손으로
한없이 부드럽게 떨어지는 것들을 받아주고 있습니다.
『달은 내려와 꿈꾸고 있네:열두 개의 달 시화집 10월』
윤동주 외 지음 |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저녁달고양이 펴냄|112쪽|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