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처럼 살다간 에비타②
탱고처럼 살다간 에비타②
  • 신금자
  • 승인 2008.02.20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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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페론
▲ 신금자[수필가·본지 편집위원]     ©독서신문
가난한 자의 성녀, 부유한 자의 창녀
 
 페론 정부가 들어서자 에바 페론은 권력의 핵심에 서서 또다시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눈엣가시였던 영국이나 유럽 등, 외국자본을 추방하고 기간산업을 국유화시켰다. 여성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동법을 개정하고 이혼과 혼인에서의 남녀평등보장, 무료교육, 의료혜택 등등, 특별히 여성이나 노동자처럼 힘없는 사람들의 권익보호에 힘썼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광활한 대지에서 생산한 육류와 곡물 수출로 비축해둔 탄탄한 국고를 풀어 노동자의 임금인상과 사회복지보장제도, 빈민주택정비에 나섰다. 반면, 기득권자들에게는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 기부를 하도록 은근히 압력을 넣었다.

 어찌할까. 당시 남미의 5대부자였던 아르헨티나를 경제위기에 빠뜨렸으니 말이다. 비록 빈민가를 구제한다는 명목이었지만 당장 국고의 황금을 풀고 외국 기업가와 자본을 몰아내고 무시하다 외려 무역의 역풍을 맞았다. 자국에서 생산되는 엄청난 곡물과 육류의 수출길이 온전했겠는가.
 설상가상으로 막 일어서려던 공업이 외려 수입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이는 그녀가 죽은 후에도 내내 논란거리가 되었다. 진정으로 가난한 자를 위한 정책이었다고도 하고 더러 대중의 인기를 업고 권력을 이어가려는, 그야말로 포퓰리즘의 상징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조금 더 멀리 내다보고 정책을 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니 그녀를 일컬어 가난한 자들은 성녀라 칭송했지만 부유한 자들은 한낱 몸 파는 저급한 여자로 치부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삶의 스텝

 거듭 밝히지만 탱고는 바로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문화다. 음악이 없는 인생을 상상할 수 없듯, 거리마다 오며가며 탱고와 악사들이 즐비하다. 춤에 대한 관심만큼  쇼윈도에 탱고를 출 때 입는 옷과 모자, 구두를 내걸고 파는 가게들 또한 아르헨티나의 자연스런 풍경이다. 가끔 월급을 몽땅 털어서 구두를 산다. 이들에게 멋있고 질이 좋은 구두는 필수품이다. 춤의 원형을 신기 위해서다.
 때문에 거리의 악사들, 라틴음악과 함께 호흡하는 탱고가 이곳 사람들의 삶이다. 더불어 아르헨티나는 에비타를 빼고 얘기할 수 없다. 실제로 사람들은 ‘에비타’ 하면 아르헨티나를 떠올리고 ‘아르헨티나’ 하면 축구랑 탱고보다 에비타를 먼저 떠올린다.
 
동시에 에비타는 아르헨티나 탱고와도 불가분의 관계다. 탱고의 상징이 원주민과 이주민의 갈등이었다면 에비타를 대변하는 것은 하층민을 위한 그녀와 특권층과의 갈등이다. 배고프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동원했던 그녀다.
 
 그런 그녀가 정치 막판에 놓은 악수를 어찌 보아야 하는가. 그 어떤 정부도 자기들의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서 광포한 수단을 썼다면 그 정부는 이미 국민들에게 외면 받기 마련이다. 페론 정부도 그들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을 무참히 몰아내고 주위에는 믿을 수 있는 인척들로 포진시켰다.
 
 기업을 죄어서 그녀가 세운 페론복지재단에 헌금하도록 하였고 따르지 않으면 악덕기업으로 도산의 위기까지 몰아갔다. 그 때문에 반대파들은 민중들의 지지를 받기 위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난까지 일었다.

 어쨌거나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아르헨티나 빈민들이 에비타에게 보내는 지지는 절대적이다. 이들에겐 무슨 수를 써도 불변할 진리에 가깝다. 탱고의 기본인 ‘슬로우’를 무시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퀵’만 하다가는 우리의 인생에 엉뚱한 것이 배달될 지도 모른다. 에비타도 자칫 이런 우를 범한 것이 아니랴.
 
 
 아르헨티나여! 이제는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애당초 아르헨티나 정부에서는 탱고가 소외되고 구석진 하류사회에서 발생되었기에 탱고를 일정한 장소 즉, 사교장과 환락가에서만 추도록 제한시켰다. 그러다 탱고가 세계 각국으로 유행하여 퍼져나가자 결국 아르헨티나 정부에서도 탱고금지제도를 거둬들이고 탱고 발생지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널리 보급하기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에비타 또한 빈민노동자의 편에 섰을 때 상류층에서 독설을 퍼부었다. 저급한 창녀라며 멸시했다. 그런 그녀가 부자들에게서 환수한 돈과 정부의 곳간마저 활짝 열어 빈민들 구제에 힘썼다. 그녀는 그들에게 ‘내일’이라는 희망이고 등불이었다. 아르헨티나 전역에서 빈민노동자들이 그녀를 성녀라고 떠받들고 열광했다.
 
 그 때문인가? 그녀에게 탱고가 깃들고, 탱고가 곧 그들이니 그녀를 위해 추는 태생적 고락이 있어 탱고는 황홀하기 그지없다. 
 문득, 탱고는 춤이라기보다 그들이 토해내는 저마다의 한 가닥 하소연으로 느껴지니 어인 일인가. 
 
 아직도 귓가에 "don't cry for me argentine" 가 쇠잔하다.
영화 ‘에비타’ 에서 에비타 역인 마돈나가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두 번 있다. 남편인 후안 페론이 대통령에 당선된 날, 승리 연설로 불렀을 때는 “아르헨티나여! 이제는 울지 말아요.” 가 적확하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리라는 메시지로써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녀가 33세의 아직 아름다운 나이에 백혈병과 자궁암으로 가망이 없었을 때, 대통령 궁으로 몰려든 군중들을 향해서 불렀다. 궁궐 발코니에 나와 고통을 참으며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른 것은 “아르헨티나여! 이제는 나를 위하여 울지 말아요.”로 그녀가 그들에게서 받은 사랑이 울컥 전해진다. 저간의 사정을 필자가 다 피력할 수는 없으되 사뭇, 시작과 작별이 이리 가슴을 여미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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