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처럼 살다간 에비타①
탱고처럼 살다간 에비타①
  • 신금자
  • 승인 2008.01.2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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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페론
▲ 신금자[수필가·본지 편집위원]     ©독서신문

 
 아르헨티나여! 강한 리듬감, 부드럽고 다이나믹한 춤이 탱고가 아니었더냐? 아, 고개를 저었다. 오로지 탱고는 추는 사람의 기분에 맡길 뿐이다. 탱고를 추는 사람의 마음이 슬프면 탱고도 슬프다. 유명한 뮤지컬 “에비타”에서 맛보았던 탱고가 정녕 그랬다. 사람들은 느릿느릿 발을 들고나며 어깨를 서로 맞대고 애써 눈물을 감추었다.
 
 에비타를 잃은 아르헨티나는 한 달 내내 그녀를 기리며 탱고를 추었다. 농장, 길거리, 허름한 창고 등, 때도 장소도 없었다. 그렇게 슬픔을 삭였다. 이리 슬픈 탱고를 상상이나 했던가. 어쩌면 어린 나이에 대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진출한 에비타에게도 먼 추억이 되니 더없이 흡족한 애도일지도 모르겠다. 
 
 
 빈민촌에서 태어난 탱고와 에바 두아르테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사창가에서 생겨난 도시 빈민층의 음악이고 춤이었다. 하층민들이 우울하고 고단한 허리를 펴며 사뭇 흥얼거리다 만들어졌으리라. 그러다 기분을 조금씩 뭉치고 보태보기도 하였을 터이다. 일을 끝낸 해방감으로 짓는 몸동작  말이다. 의외의 그 흥겨움이 맵시를 내며 삽시에 번져 아르헨티나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질박한 삶에서 우러난 그들만의 춤을 흥미롭게 본 미국이 대번 끌어다 무대에 올렸다. 무성영화시대인 1920년 파리에서 ‘탱고’를 상영하였던 바, 자못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탱고가 전 세계인들을 은근히 유혹했고, 해를 거듭할수록 유명세와 함께 감미로운 율동과 정열적인 느낌의 멜로디로 세련미를 더했다.   

 비슷한 시기인 1919년 에바 두아르테가 태어난 곳도 아르헨티나 시골 빈민가였다. 농장주와 그 농장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힘이 있는 아버지가 있었지만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고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던 서러움이 탱고를 불렀을까. 그녀는 대도시를 동경했다.
 
 그러다 15살에 첫남자에게 떼를 써서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따라나섰다. 호기심 많고 끼가 많은 그녀다. 그래서 그 곳에 가면 기회를 잡을 수 있으리라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여행도 그 도시의 환상을 깨기 위해서 간다고 하지 않던가. 에바 두아르테가 동경한 부에노스아이레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무렴, 가진 것이 없었으니 잃을 것도 없다. 다행히 그녀는 쉽사리 기죽거나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사창가에서 혹은 댄스홀에서 이리저리 섞이며 신분을 차별하지 않는 탱고를 닮았다. 춤을 출 때 파트너가 필요하듯, 그녀는 남자를 사귐에 있어서도 다분히 사교적이었다. 오로지 치고 오를 수 있는 기회라면 주저하지 않았다. 요즘 말로 쿨하게 사랑하고 헤어지기를 거듭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야멸친 욕심이었다.
 
 
 후안 페론을 만나다
 그런 그녀가 ‘너는 내 운명’을 만났다. 군사 쿠데타의 주역인 정치가 후안 페론과의 동거와 결혼이 그것이다. 그녀와 후안 페론의 첫 만남은 아르헨티나 예능인의 지진피해자구원대회에서였다. 그 때 후안 페론은 육군 대령이었지만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실세였다. 마침 부인을 잃고 독신이었던 그는 그녀에게 다정했다.
 주변의 만류와 질시가 있었으나 개의치 않는 그의 모습이 든든했다. 모처럼 산다는 것이 기뻤다. 그러니  참고 기다린 쾌거를 놓칠 수는 없다. 이 사람을 도와서 왕비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은 것은 그녀이기에 가능하다하겠다.

 언제 그렇게 많은 준비를 했던 것일까. 혹자는 무모하다하겠으나 이미 생각은 저만치 달아나 있었던 모양이다. 페론의 정부가 된 에바 두아르테는 곧 후안 페론을 능가하는 정치력을 보인다. 군부출신인 페론에게 지배계층인 군부를 과감히 버리도록 한다. 그리고 가난하고 기본적인 인권도 누리지 못하는 아르헨티나 노동자를 지지기반으로 삼도록 부추겼다.
 
 그런데 사회악의 고리를 끊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했다.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기득권자들을 죄악시해서는 곤란하다. 충분한 과도기를 거치지 않은 채 국민들을 급작스레 두드리고 통제했던 것 같다. 이 경제정책의 반발로 페론은 정적들에 의해 투옥된다. 아니, 그들은 페론의 세력 확장에 두려움을 느꼈다고 해야 옳다.

 이때 에바 두아르테가 그를 지켜낸다. 절망한 그가 차라리 망명하여 편히 살자는 것을 설득하고 밖에서는 민중들에게 페론에 대한 정책적 지지를 호소하였다.
 “가진 것 없는 여러분을 사랑하고 나 같은 이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페론”이라며 외치고 또 외쳤다. 그를 옥에서 구해내기 위해 선봉에 섰다. 쇼걸이며 삼류배우였던 그녀의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 걸까. 그녀의 생각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가난한자들과 그녀가 같은 선상에서 웃고 울 수 있다는 것이 통했다.
 
 급기야 그녀와 페론을 연호하며 민중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광장을 가득 메우고 그가 있는 곳을 사방으로 에워쌌다. 자칫 폭도로 변할지도 모르는 대중들의 페론 지지에 정부에서도 두 손 들어 그를 석방했다.  감옥에서 풀려난 그는 노동자들 앞에서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위정자가 되겠노라고 감격에 찬 연설을 하며 에바 두아르테를 힘껏 포옹했다.
 그리고 다음날 에바 두아르테와 동거를 끝내고 결혼식을 올린다. 그 여세를 몰아 이듬해인 1946년, 페론은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페론의 심벌이 된 에비타의 호소력 있는 연설은 민중들 가슴속으로 깊이 파고들었고 이제 아르헨티나 민중들은 그녀 편에 확실히 섰다.

 ‘에비타’는 에바 두아르테가 후안 페론과 결혼하고 난 후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지어준 그녀의 애칭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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