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현 (월간 선한이웃 발행인}
최근 자주 떠올리는 단어가 '중립'이라는 것과 '양비론'이라는 것이다.
누구든 자기가 속한 모임에서 구성원들간에 서로 불신하고 주장마다 반박하는 형국이 되면서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경우 이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다툼의 내용에는 옳은 것이 있고 그른 것이 있기 마련이지만 한쪽은 다 옳고 다른 한쪽은 다 그른 것은 아니다. 표현양식에 따라 오해와 불신과 반목이 확대되도록 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어서 바른 주장을 위해서는 그리고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자제하며 표현해 달라고 하는 것이 당연히 필요하다.
이런 경우 양 편 모두에게 이러저러한 부분은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필요하지 한편이 더 옳으니 다른 한편은 가만히 있으라고 말해서는 안된다는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양비론이라고 매도한다. 혼란한 상황에서는 중립적인 자세로 자제를 요청하는 것이 맞는 일이지 편을 들어서는 답이 나오기 어렵다고 본다.
비교적 바른 입장이었던 쪽도 다른 쪽도 다 섭섭하게 여기고 중립에 선 자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는 결코 떳떳한 것이 못된다. 특정한 사람을 위한 모임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공유한 이들의 모임이라면 더욱 그렇다. 자신들의 입장만 옳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대개 편협하기 마련이다.
다른 이들의 외침에 결코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헛소리거나 쓸데없는 소리거나 모자란 생각이라는 식의 매도만 있을 뿐이다.
어떤 주장이든 할 수 있고 그것이 다른 이들의 동의를 얻게되면 그것은 좋은 일이지만 다른 경우 다른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아쉽지만 주장을 접거나 혼자만 그리 생각하면 된다.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거나 왜 인정해 주지 않느냐고 항변할 일이 아니다. 더 철저한 내용으로 다시 주장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그리 깊지않은 생각이고 다 옳기만 한 것도 아닌 주장들을 끝없이 내세우다보면 분란만 커진다. 이들은 다른 이의 요청을 무시할 뿐이다. 그래서 그 모임은 상처로 물들고 만다. 합리적이지 않거나 고집스러운 배타적인 이들 때문에 말이다. 주장은 할만큼만 하는 것이 맞다. 지나친 우월감은 자신들을 죽이는 기재가 된다.
세상이 나아지려면 자기반성에 철저한 이들이 더 늘어야만 한다. 자기의 들보는 못보거나 안보고 남의 눈의 티만 찾는 시각으로는 세상 잘 살기 어렵다. 도덕적이든 지적이든 우월감에 빠진 이들의 편협함은 세상을 늘 어지럽혀 왔다고 본다. 대단히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오늘날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독서신문 1394호 [2005.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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