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 지성 잠들다… 다독가 최인훈의 '책'
대한민국 최고 지성 잠들다… 다독가 최인훈의 '책'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7.23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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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누구보다도 책을 사랑했던 대한민국 대표 소설가 최인훈이 23일 세상을 떠났다. 4개월 전 진단받은 대장암으로 투병하다 가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눈을 감았다.

최인훈은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월남했으며, 1952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해 1956년 중퇴했다. 1958년 군에 입대해 통역장교로 6년간 복무했다. 등단작은 월간문예잡지 <자유문학>에 발표한 군 복무 기간 쓴 단편소설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이다. 그의 대표작인 『광장』은 4·19혁명이 일어난 해인 1960년 11월에 잡지 <새벽>을 통해 발표됐다. 이후 발표한 소설 『회색인』, 『서유기』, 『총독의 소리』, 『화두』 연작 소설 『구보씨의 일일』, 『태풍』과 희곡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산문집 『유토피아의 꿈』, 『문학과 이데올로기』, 『길에 관한 명상』 등은 모두 대한민국의 시대상을 꿰뚫는 통찰이 돋보이는 걸작이라는 평을 받으며 독자들 사이에서 널리 읽혔다.

동인문학상(1966),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1977), 중앙문화대상 예술 부문 장려상(1978), 서울극평가그룹상(1979), 이산문학상(1994), 박경리문학상(2011) 등을 받았으며, 1977년부터 2001년까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지냈다.

최인훈은 한국현대문학사에서 그 누구보다도 지적인 작가라고 알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엄청난 독서가였다.

그의 소설 주인공들조차 다독가이고, 작품마다 책 내용을 깊게 다뤘을 정도로 그는 책을 사랑했다. 대표작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철학과에 다니는 독서광이다. 이명준은 소설에서 “젊고 가난한 철부지 책벌레다”, “책을 모으고 미라를 구경하러 다닌다”라고 표현됐다. 이 외에도 『광장』에서는 “400권 남짓한 책들. 월간 잡지가 한 권도 끼지 않았다는 게 자랑이다”, “그녀는, 금박이 입혀진 두툼한 책이, 즐비하게 꽂힌 책상이 놓인 방 안에, 오히려 끌리는 듯했지만”이라는 책과 관련된 문장으로, 작가의 책에 대한 생각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회색인』의 주인공 독고준도 『광장』의 이명준과 마찬가지로 애독가다. 독고준은 “책장을 대하면 흐뭇하고 든든한 것 같았다. 알몸뚱이를 감싸는 갑옷이나 혹은 살갗 같기도 하다. 한 권씩 늘어갈 적마다 몸속에 깨끗한 세포가 한 방씩 늘어가는 듯한, 자기와 책 사이에 걸친 살아 있는 어울림을 몸으로 느낀 무렵이 있다”, “별하늘을 보는 것은 언제나 좋았다. 책 읽는 것 다음으로 좋았다”라는 생각을 한다. 또한 독고준은 “그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에게 있어 책이란 계집애들에게 있어서의 로션이나 루주 같은 것이었다”, “누나가 밭일 속으로 망명한 것처럼 그는 책 속으로 망명했다”, “그는 여태 책 속에서만 살아왔다”라는 문장으로 표현된다.

『광장』에 이은 또 다른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화두』는 책과 독서에 관한 소설이다. 자전적인 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책을 읽기 위해 산다. 작가는 “책을 읽는다는 일은 머릿속에다 이 세상 어떤 극장도 따르지 못한다는 극장을 지어놓고, 아낌없이 제작비를 들여서 만든 영화를 상연한다는 일이었다. 현실의 어떤 영화도 그렇게는 만들지 못하지 않는가”라는 표현으로, 책이 극장에서 상영되는 어떤 훌륭한 영화보다 낫다고 설명했다. 소설에는 구체적인 작품명과 내용도 등장해 최인훈의 책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주로 식민지시대의 문학작품과 세계문학, 사상서, 역사서다. 우리나라 문학으로는 신채호, 염상섭, 채만식 등 진보적 문인들의 작품이 주였으며, 외국 문학으로는 도스토예프스키, 푸쉬킨, 고골리, 오스트로프스키의 작품이 있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레닌의 『제국주의론』, 백남운의 『조선경제사』 등 사회주의적인 사상서도 등장한다.

그는 『화두』에서 도서관에 대해 예찬하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나는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서 태어나가고 있었다. 도서관은 큰 책이다. 너무 커서 들고 다닐 수 없기 때문에 한 곳에 놓아두고 있는 큰 책이다. (중략) 이(도서관) 속에서 사람은 사람이 된다”, “도서관에서의 책 읽기를 통해 나는 또 하나의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중략) 내가 좋아서 다니는 학교였다”라는 문장에서는 도서관과 책에 대한 그의 애정이 느껴진다.

책이 만들어낸 한 사람·소설가·예술가·현인이 잠들었다. 그가 남기고 간 것은 단지 그가 쓴 책들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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