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발전소
독서발전소
  • 이재인
  • 승인 2006.04.0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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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인 (경기대교수 · 소설가)
 

 


엊그제는 참으로 좋은 날이었다. 좋은 날이라니 돼지꿈이나 복권이 당첨되는 그런 날이 아니다.
30년 전이었다. 그때 나는 시골의 한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담임은 2학년 5반. 여학생들이었다. 그렇게 만난 57명은 나의 소중한 인연의 만남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방과 후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을 마련했다. 그것이 끝나면 노래와 율동으로 독특한 종례 시간을 보냈다.
 그런가하면 반 애들과 함께 교내 체육대회 응원전을 펼쳤다. 모두가 사제동행의 산물이었다. 생일을 맞이한 학생들에게는 책을 사다가 선물했다. 농사일로 결석 예정자들에게는 급우들을 동원하여 농촌 일손 돕기에 나섰다.
 이러한 나의 열정에 젖어 우리 학급은 교내 학력고사 1등, 교내 체육대회 응원상 수상, 무결석 반으로 충북 도내에서 평판이 자자했으며 부러움을 샀다. 그것을 기반으로 나는 승승장구 도교육위원회로, 문교부로, 문교부에서 대학으로 영전에 영전을 거듭했다.
 그런데 지난 12일, 그때 내게 배운 30대의 아줌마 두 명이 내가 경영하는 「예산문학관」으로 찾아왔다. 한결같이 그들은 지금도 책읽기, 글쓰기, 그림그리기로 자기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면서 아름답게 살고 있었다. 그들은 내게 말했다.
"선생님의 독서의 열정과 반애들 사랑은 20년이 넘었는데 아직 모닥불 같아요……."
 이것은 자랑이 아니다. 교육의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한테 아직은 교육에 희망이 있다는 말을 남기고 싶어 이글을 쓴다. 교육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 관심과 격려와 열정이 있는 한 교육은 희망이 있다. 잘 키우고 뜨겁게 열을 가하면 그 풀무 가마 속에서 이상과 꿈이 생산되게 마련이다.
선생은 있어도 스승이 없다는 말은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데에서 오는 말이다.
 나는 금년으로 35년간 교직에 봉사했다. 실력이 모자라고 아는 것이 적었지만 나름대로 열정과 사랑으로 정성을 다했다. 후회가 없다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최선을 다했다. 책읽기, 독서지도로 나는 그들의 삶의 터전을 견고히 다져왔다는 것이 제자들의 고백이다. 듣기가 부끄럽지만 그래도 보람은 있다.
 
 지난해 1년은 나의 교육의 길을 돌아보면서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냈다. 거기에서 우리 교육의 허실을 깨닫고 우리 정치문화의 정착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안도 생각해 봤다. 그러나 오늘을 묻는 이가 없다. 다 말하려는 사람들뿐이다. 듣는 귀가 복되다는 진리를 잊은 것이다.
 이제 금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책이, 인쇄업이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아직 독서발전소는 학교 안에 살아 있다. 그것이 존재하는 한 우리의 미래는 있다. 여기에 스승도 사랑도 있다.

 
독서신문 1393호 [200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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