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생리, 왜 말을 못해?”… 11년만의 반가운 월경페스티벌
“월경·생리, 왜 말을 못해?”… 11년만의 반가운 월경페스티벌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5.2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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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대부분의 여성이 한 달에 한 번씩 겪는 자연 현상으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월경’이나 ‘생리’라고 하면 거부감부터 느끼는 사람이 많다. 사회 전반에 팽배한 월경에 대한 이러한 거부감이나 혐오감은 여성들이 월경을 감추게 만들고, ‘생리대 파동’, ‘여성 인권 저하’와 같은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일으킨다. 최근 이런 부조리를 없애기 위한 운동이 활발하다.

여성의 월경에 대한 혐오감을 없애고 사회 문제를 막기 위해 2014년 독일의 비영리재단 ‘워시 유나이티드’의 제안으로 ‘세계 월경의 날’이 지정됐다. ‘세계 월경의 날’이 5월 28일인 이유는 평균적으로 여성이 월경을 28일 주기로 5일 동안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세계 월경의 날’을 맞아 지난 26일 서울 영신로 하자센터 앞마당에서 ‘월경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페스티벌 참가자들은 생리대 위에 붉은 글씨로 ‘너네가 생리를 알아?’, ‘생리대 가격 내려!’, ‘그날이라는 말 대신 생리’, ‘피 흘리는 여성들 우리는 외친다’ 등의 문구를 적었고, 생리대를 곳곳에 붙였다. 또한, 이들은 속옷 위에 생리혈이 묻은 것처럼 색칠해 그 속옷을 줄에 걸었다. 페스티벌 기획단은 “월경 터부(Taboo: 금기)와 여성 혐오, 몸에 대한 ‘생산성’과 ‘정상성’ 담론 등 사회적 배제와 차별에 관해 이야기 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페스티벌 참가자들은 여성의 월경을 터부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여성의 건강에 좋지 않은 일회용 생리대에 대해 지금까지 조사하지 못하게 하고, 쉽게 말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입장이다. 비록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검출된 수치와 인체 유해성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지난해 일부 언론에서 유한킴벌리, 깨끗한나라 등의 일부 일회용 생리대에서 다이옥신, 프탈레이트, 잔류 농약, 인공향료,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등 각종 유해물질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일부 여성들의 분노는 커졌다.

『걸 페미니즘』의 저자 중 한 명인 청소년 여성 인권 운동가 ‘이기’는 「감추고 부끄러워할수록 안전할 수 없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생리의 ‘생’ 자를 입에 담기도 어려운 분위기에서 어찌 당당하게 나의 생리를 외치겠는가”라며 “사회 어디에서건 생리라는 말을 쓰는 것조차 피하는데, 생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일어날 리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일회용 생리대에서 발암 물질이 검출된, ‘생리대 파동’은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며 “나는 생리대의 성분을 규제하는 법규가 없다는 사실에 허탈한 심경마저 들었다”고 덧붙였다.

여성의 월경을 터부시하는 분위기는 ‘여성의 몸’에 대한 담론으로도 이어졌다. 사회가 몸에 해로울 수 있는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는 대신 생리컵을 사용하지 못하게 ‘여성의 몸’을 억압한다는 것이다. 한 참가자는 “생리컵을 사용하면 ‘남자들이 안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걸 페미니즘』의 저자 ‘이기’는 자신의 부모에게 생리컵을 사겠다고 돈을 달라고 하자 어머니가 “그런 거 하다가 몸 다 상한다”, “어떻게 임신이나 성관계도 해 보지 않았으면서 그런 걸 끼겠냐”고 말했다. 그는 “내가 생리컵을 사용한다고 하면, 청소년이 그런 걸 쓰다가 ‘처녀막’이 손상되면 어쩌냐는 식의 말도 왕왕 듣는다”며 “내가 청소년인 것과 ‘처녀막’ 사이에 어떠한 연관 관계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처녀막’은 꼭 남자와의 성관계를 통해서만 손상돼야 한다는 식의 언행은 정말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페스티벌에서의 월경에 대한 논의는 여성의 복지와도 연결됐다. 참가자들은 “생리대는 비싸다”라며 “나라에서 여성 복지를 위해 무료로 보급하거나 가격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2016년 생리대를 사지 못해 깔창으로 대신한다는 어느 저소득층 가정의 사례를 언급했다. 또한, 한 참가자는 “생리대를 실수로 가져오지 못해 보건실을 찾아가 생리대를 요청하면 핀잔을 하고 생리에 대한 요구를 당당히 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생리대는 여성이 생활하는데 필수적인 물품이지만 국가에서 구매비를 지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싸며, 그 가격이 끊임없이 오른다.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최규복 유한킴벌리 사장이 “한국 생리대 평균 가격은 높은 편”이라고 인정했다. 또한, 비록 공정거래위원회가 일회용 생리대 시장점유율 46.6%를 차지하는 유한킴벌리의 생리대 가격 인상이 ‘가격 남용’으로 볼 수 없다고 결론지었지만, 유한킴벌리는 공정거래법의 제재를 벗어나는 방법으로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청소년 여성 인권 운동가이자 『걸 페미니즘』의 저자 양지혜는 「나의 몸은 나의 것」이라는 글에서 “여성 청소년의 생리나 성에 관한 문제들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없었던 현실이, 애초에 생리 문제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이유이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월경 문제는 환경과 동물 생명권에 대한 논의로도 이어진다. 한 사람이 13세부터 50세까지 월경하는 약 37년 동안 사용하는 일회용 생리대는 약 1만1000개로 알려졌으며, 이를 생산하기 위해 여의도 면적의 숲이 파괴된다. 또한, 월경 페스티벌 기획자들은 “우리가 인간의 월경에 대해 고민한다면 비인간 동물의 재생산권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닭은 품종 개량으로 1년에 300여개의 알을 낳는데, 인간으로 치면 1년에 300번의 월경을 하는 것이다. 닭이 일정한 주기로 배란을 해 수정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무정란이기 때문이다.

월경페스티벌은 1999년에 한국에서 처음 개최된 후 2007년까지 9년 동안 이어지다가 그 맥이 11년 동안 끊겼었다. 페스티벌이 긴 시간 동안 중단됐었던 이유는 여성 인권에 대한 억압이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페스티벌은 참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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