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계, 정의는 없다··· ‘비정규직 횡포’ 甲
방송계, 정의는 없다··· ‘비정규직 횡포’ 甲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1.2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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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목격자들’, 사회 비판 자격 없어
방송사 ‘관례’ 탓하는 한심한 고용노동부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8월 비정규직 근로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만8000명 증가한 654만2000명을 기록했다.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은 32.9%를 차지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수치’로만 봤을 때는 잘 와 닿지 않는다. 사회학자 오찬호는 그의 책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인천공항이 12년 연속으로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1위를 한 예를 들어 설명했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철저히 ‘을’이기에 친절한 미소를 잃어선 안 된다. ‘갑’의 위치에 있는 공항 측은 고객의 아주 사소한 불만이라도 접수되면 ‘직원 관리 못하면 다음에 재계약이 어렵다’는 식으로 위탁업체 ‘을’을 협박한다. 또 ‘을’은 자신들이 고용한 노동자 ‘병’에게 똑바로 일하지 않으면 해고할 거라고 윽박지른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해고당하기 쉬우니 부당대우라도 말을 들어야 한다. 그러니 모두가 친절하고 이곳을 이용하는 모두가 편안함을 느낀다. ‘서비스 1위’의 이면이다. 진실을 알게 된다면 부끄러워 말도 못할 ‘1’이라는 숫자다.”

인천공항과 비슷한 방식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우하는 김포공항의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회식자리에서 내 손을 잡더니 자신의 아랫도리에 넣고 내 입에 혀가 쏙 들어오더라. 그런데도 아무 말도 못한다. 여기서 잘리면 다른 일 찾기도 어려우니까”라고 했다.

이렇듯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은 수치만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은 속된말로 ‘까라면 까야’ 하는 ‘수직적 권력구조’다. 한편, 비정규직 문제를 비판하는 방송사들에서 유독 ‘수직적 권력구조’의 문제가 심하다.

 

비정규직 문제 비판하는 방송사... 비정규직 착취는 ‘관례’

지난 24일 KBS 구성작가협의회 자유게시판에는 방송제작 현장의 불공정 관행에 대해 비판하는 어느 방송작가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은 각종 커뮤니티에서 공유됐고, 네티즌들은 비정규직을 차별해 법정 근로시간을 무시하고 야근·주휴수당을 주지 않는 등 불법을 자행하는 질 낮은 방송 제작 환경을 성토했다.

해당 글은 먼저 시사보도프로그램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뉴스타파 ‘목격자들’의 제작행태를 비판했다.

글쓴이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2016년 작가로 일할 당시 밤낮도, 주말도 없이 24시간 일을 하며 160만 원을 받았다고 했다. 160만원은 월급도 아니었고, 방송이 끝나면 지급되는 형태로 평균 6주 만에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작가였으나 주 업무는 밥 심부름에 커피 심부름이었다고 한다. 당연히 야근수당, 주휴수당은 없었다. 그의 전임자들은 수면 부족으로 만성 두통과 복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그는 출근한지 1주일이 됐을 때 피디에게 “여기는 똑똑한 작가가 아니라 말 잘 듣는 작가를 원하는 데야. 그렇게 똑똑하게 굴 거면 여기서 일 못해. 다들 그렇게 일해 왔고, 그게 여기의 규정이야”라는 말을 들었다.

글쓴이는 “전태일 열사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 평화시장의 여공들이 생각났다. 밖에서는 정의로운 척, 적폐를 고발하겠다는 피디들이 내부의 문제에는 입을 조개처럼 꾹 닫았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적폐 청산을 부르짖을 때마다 나는 웃긴다”고 썼다.

또 그는 뉴스타파의 ‘목격자들’에서 일했던 경험도 언급했다. 면접 시, 합격 통보 시 페이를 알려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통보받지 못했다. 2016년 최저임금이 126만 원이었는데 120만원을 받고 일하며 프리뷰, 섭외 등 많은 일을 떠맡았고 프로그램 특성 상 섭외나 후반작업이 까다로워 근무시간은 항상 엄청났다고 썼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의 한 제작진은 글쓴이의 낮은 임금에 대해 “사회 정의를 지키는 일인데, 크라우드 펀딩으로 받은 돈이 넉넉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정규직 제작진들이 최저임금 수준으로 돈을 받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근로자들과 대조적으로 고액 연봉을 받는 정규직들도 많다.

그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는 고용노동부도 비판했다. 방송 근로 환경을 고용노동부에 고발했으나 돌아온 답은 “방송 쪽은 제대로 처리가 안 될 수 있어요. 그래도 괜찮으면 조사 받으러 한 번 나와요”였다. 왜 방송 쪽은 처리가 잘 안되냐는 글쓴이의 질문에 고용노동부는 ‘관례’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언론고시 커뮤니티 ‘아랑’에서는 이 글에 공감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댓글들은 다음과 같다.

“이젠 관뒀지만 작가일 했던 사람으로서 극공감합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의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외면하고 무시하면서 대내외적으로 정의를 부르짖는 모습을 보고 실소를 지었던 기억이 나네요. 방송국 곳곳에서 먼지 뒤집어쓰고 밤새 발로 뛰어가며 일하는 비정규직 스텝들, 제발 먹고 사는 걱정 없이 일할 수 있게끔 해줬으면 좋겠네요. 예전 방송에 있던 FD분, 계약직으로 오랫동안 일하셨는데 일정기간 지나면 정규직 전환해줘야 돼서 순식간에 일방통보 받고 잘렸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제발 이번에는 변화가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네, 왜 공부 많이 하고 똑소리 나던 사람들이 입사하면 젊은 날의 패기를 지우고 관례며 전통이며 하는 누더기 옷을 입는지 미스테리 합니다”

“비슷한 의미로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도 안 봅니다. 작가 자르려고 팀 해체시키는 거 보고 정나미가 떨어지더라고요. 프리랜서, 계약직 우습게 아는 건 진보, 보수 가리지 않더군요”

이렇듯 ‘사회 정의를 지키는 일’을 ‘사회 정의를 지키지 않으면서’ 행한다는 모순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곳이 방송계다.

 

끊이지 않는 방송사 갑질 사고 ‘화유기’ ‘혼술남녀’...

지난해 12월 23일 CJ E&M의 채널 tvN의 화유기 세트장에서는 소도구 담당 스태프가 천장에 샹들리에를 매다는 작업을 하던 중 3m 이상 높이에서 떨어져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문제는 전기를 관리하는 전식팀도 아닌 소도구팀에 속한 스태프가 전선을 들고 샹들리에를 설치하러 천장에 올라간 것이었다. 계약을 해 일거리를 받는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원청업체가 시키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지난해 7월 아프리카에서 EBS의 '야수의 방주’를 촬영하던 독립 PD 두 명이 운전사를 고용하지 못해 직접 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또한 그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출국 전 방송 제작과 관련해 방송사의 부당한 간접비 요구 관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했다고 한다. 물론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지난 2016년 10월, CJ E&M의 드라마 ‘혼술남녀’의 신입 조연출이었던 故 이한빛 PD는 방송제작환경에서의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노동력 착취와 언어폭력’을 유서를 통해 언급했고 ‘혼술남녀’의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약직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계약직 스태프의 선입금을 돌려받아야 했던 비애를 토로했다.

 

갈 길 멀어... 지속적 공론화와 구체적인 개선안 필요

2017년 12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방통위·문체부·과기정통부·고용부·공정위 5개 부처가 합동으로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종합대책에서는 ▲방송제작인력 안전강화 및 인권보호 ▲근로환경 개선 ▲합리적인 외주제작비 산정 및 저작권 배분 ▲외주시장 공정거래 환경 조성 ▲방송분야 표준계약서 제·개정 및 활용확대 등 5개 핵심 개선과제를 포함했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24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빛마루 방송지원센터에서 방송영상산업 제작진들과 간담회를 갖고 방송제작 현장의 불공정 관행 개선과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방송제작 현장의 의견을 들었다.

방송업계 관계자들은 수면, 근무시간, 최저임금 보장 등 방송제작 환경과 근로환경 개선을 한 목소리로 주문했다. 방송프로그램 제작비를 현실화하고 저작권, 수익배분 문제에서도 공정한 거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에 대해 도 장관은 "방송 분야 표준계약서 제·개정과 보급을 확산하고 외주제작과 근로환경 실태조사를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등 방송 외주제작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박창식 드라마제작사협회장은 지난해 12월 종합대책 발표를 두고 “이번 종합대책은 좋은 의도이지만 발표한 바대로 이루어져 우리 문화계가 글로벌 시장의 선두로 나아갈 수 있으려면 상생협의체를 통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 등의 실질적인 방향으로 가야한다. 그동안 문화계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와 같은 대책 수립 발표는 있었으나 실제 진행 과정에 있어서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고, 외주제작사들에도 큰 도움이 못됐다”고 말했다.

여전히 방송계 적폐청산에 대한 구체적인 개선안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지난해 12월 20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노동·법률단체에서 함께 만든 방송계를 위한 ‘직장갑질119’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은 오픈한지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방송인 600여명이 참여해 방송계의 임금체불, 불법파견, 성희롱, 성추행 등을 토로했다. 지속적으로 고통 받는 방송계를 위해 ‘매번 말만’이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게 지속적인 공론화와 구체적인 개선안들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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