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의 힘을 빌린 영화, 스크린을 접수하다
텍스트의 힘을 빌린 영화, 스크린을 접수하다
  • 권보견 기자
  • 승인 2018.01.05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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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스토리의 비결은 ‘원작에 대한 이해’와 ‘새로움’

[독서신문 권보견 기자]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살인자의 기억법’ ‘남한산성’ ‘마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내부자들’ ‘은밀하게 위대하게’ ‘이끼’ 등 텍스트의 힘을 빌린 영화들은 꾸준히 재생산돼왔다. 그러나 원작의 성공이 모든 영화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전 사례를 살펴보면 원작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대부분 혹평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하반기, 원작소설과 웹툰을 영화화한 작품들이 극장가를 달궜고,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 (이하 ‘신과함께)’이 4일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2018년 첫 천만 영화 탄생을 알렸다. 어떤 경우 외면받고, 어떤 경우 원작의 성공을 잇는 걸까?

웹툰원작영화, ‘신흥세력’

웹툰으로 먼저 만나볼 수 있었던 영화들이 지난해 말 연이어 개봉했다. 지난해 11월 29일 <반드시 잡는다>를 시작으로 <강철비> <신과함께>가 스크린에 걸렸다.

엔터테인먼트의 생명은 창의성에서 나오는 새로움의 재미에 있기 때문에 휘발성이 큰 분야다. 새로운 컨텐츠가 입소문을 탈 경우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수익도 폭발적으로 증가하지만, 대중들이 쉽게 싫증을 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해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스크린을 접수했다. 흥행 비법은 ‘새로운 각색’이었다.

<신과함께>

원작은 주호민 작가가 2010년 1월부터 2012년 8월까지 연재한 웹툰 <신과함께>이다. 영화에서는 강림(하정우), 해원맥(주지훈), 덕춘(김향기) 등 저승 삼차사들의 역할이 확대됐다. 원작에서는 망자를 호위해 무사히 저승까지 데려가는 임무만 수행했지만, 호위뿐만 아니라 재판을 받는 내내 망자의 곁을 지킨다는 설정까지 추가됐다. 김용화 감독은 “방대한 원작을 영화에 맞게 각색하려면 저승 삼차사의 시점으로 풀어가는 게 새롭지 않을까 했다”라며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영화에서는 원작에서 독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국선 변호사 진기한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저승 삼차사들의 리더 강림이 진기한의 역할까지 맡아 변호와 호위를 병행한다. 주인공 김자홍의 직업도 바뀌었다. 웹툰에서는 상사의 강요에 의한 술자리로 합병증을 얻어 사망한 회사원이다. 영화에서는 화재 현장에서 여자아이의 목숨을 구하다 사고사를 당한 소방관으로 등장한다. 김자홍의 직업 변경을 통해 사회적 문제들을 잘 건드리면서 관객들의 몰입감을 높였다.

한편 지옥의 다양한 풍경을 구현하기 위해 총제작비 약 400억 원을 투입하여 원작의 방대한 세계관을 압축한 다양한 볼거리를 만날 수 있는 것도 흥행 요소 중 하나다.

<강철비>

원작은 양우석 감독 겸 작가가 2011년 5월부터 12월까지 총 32화로 연재한 웹툰 <스틸 레인>이다. <강철비>는 완결된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여타 영화와는 달리 감독판 웹툰과 영화를 동시에 선보였다. 2017년 10월 2일부터 연재 중인 <강철비: 스틸레인2 FULL STORY>가 2011년 완결된 웹툰 <스틸레인>에서 모티브를 얻은 감독판 웹툰이다. 북한에 발생한 쿠데타로 남북이 전쟁에 직면한 상황은 가져오되 6년 동안 달라진 남북 정세를 반영해 새로운 이야기로 꾸렸다.

웹툰 <강철비>와 <스틸레인>의 가장 큰 차이는 전개 시점이다. 배경이 되는 시기가 다르다. 김정일이 사망했다는 가정하에 벌어진 첩보전을 다룬 <스틸레인>과는 달리 <강철비>는 가까운 미래 북한에서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한반도에 불어 닥친 핵전쟁 위기를 그렸다.

또한 <스틸레인>이 박재익의 시선으로 전개되던 것과는 달리, <강철비>는 북한 최정예 요원 엄철우와 남한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가 주인공이다. 두 남자의 이름 철우는 제목인 강철비를 한자로 쓴 것이다. 이에 대해 양우석 감독은 “두 캐릭터가 서로를 위해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처럼 남북도 화해의 길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중의성을 이용했다”라고 설명했다.

<반드시 잡는다>

원작은 제피가루 작가가 2010년 3월부터 8월까지 총 32회로 연재된 웹툰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이다.

웹툰과 비교해 가장 크게 바뀐 점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심덕수(백윤식)와 박평달(성동일)의 캐릭터 설정이다. 백윤식은 깐깐하고 고집 센 심덕수를 독특한 억양을 구사하는 빈틈 많은 인물로 재해석했다. 또한 살인사건 피해자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대한다는 점에서 이기적인 면이 많았던 원작보다 인간적으로 그렸다. 성동일이 연기한 박평달은 원작과는 달리 충청도 사투리를 쓰며, 실없는 농담을 즐긴다. 하지만 사건 앞에서는 진지하고 집요한 점은 원작과 같다.

두 번째는 아리동 경찰서 이 순경(조달환)의 존재다. 원작은 심덕수와 박평달의 공조 수사가 중심인 반면 영화에서는 이 순경이 조력자로 추가됐다. 마을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쫓다가 심덕수와 힘을 합치게 된다.

세 번째는 심덕수가 6.25 전쟁 당시 겪었던 ‘트라우마‘의 유무다. 원작에서 심덕수는 어린 시절 가족을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악몽에 시달린다. 심덕수가 아리동 연쇄 살인사건에 자진해 발을 담그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야기의 흐름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해당 설정이 사라졌다.

소설원작영화, ‘전통강자’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한국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9월 6일 <살인자의 기억법>이 개봉했고, 10월 3일 <남한산성>이 스크린을 찾았다.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영화도 흥행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영상화 실패의 쓴맛을 보기도 한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원작의 묘미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물론 영화가 반드시 원작과 일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작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롭게 해석하거나 재창조가 이뤄져야 한다. <남한산성>과 <살인자의 기억법> 모두 인기작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지만, <남한산성>은 ‘호평’을 <살인자의 기억법>은 ‘혹평’으로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그 이유는 ‘원작에 대한 이해 여부’였다.

<남한산성>

원작은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이다. 병자호란 배경의 소설 ‘남한산성’은 약 60만 부의 판매량을 기록한 출판계 베스트셀러다. 신하 간의 고뇌와 전란 중 백성의 삶에 집중한 작가의 필력이 돋보인다. 각본과 연출을 도맡은 황동혁 감독은 소설 속 여섯 인물의 분량을 김상헌(김윤석)과 최명길(이병헌)에 집중시켰다. 더불어 소설이 지닌 덤덤함과 허무함은 최대한 유지하려 했다. 그 결과 황동혁 감독은 ‘제38회 청룡영화상’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참고로 ‘청룡영화상’에는 각색상이 없다.

<살인자의 기억법>

원작은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이다. 영화와 원작의 차이점에 대해 원신연 감독은 “변화를 통해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지만, 소설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이동진 평론가는 ‘원작의 매력을 발라낸 각색. 배우들의 연기만 남는다’라고 평했고, 다수의 관객 역시 이에 동의했다. 감독은 소설 문체를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내레이션을 사용했다. 그러나 스릴러 장르와 상극인 것이 문제였다.

OSMU(one source multi use)

하나의 작품으로 영화, 음악, 캐릭터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건 엔터테인먼트만이 가진 특별한 장점이다.

하지만 한 번 흥행했던 영화의 속편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쉽지 않고,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의 타율이 높은 경우가 많지 않다. 대중들에게 익숙한 스토리이기 때문에 원작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움을 더하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작이 있는 작품은 항상 장·단점을 함께 안고 간다”며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을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원작과 비교 역시 불가피한데다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 관객들을 상대로 얼마나 몰입도 있게 연출할 수 있느냐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웹툰과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연이어 스크린에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정유정의 <종의 기원> <7년의 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장강명의 <우리의 소원은 전쟁>,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원작에 힘입어 영화도 성공계보를 이어나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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