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낙동으로 갈고 있는 인생 밭
[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낙동으로 갈고 있는 인생 밭
  • 권동혁 기자
  • 승인 2017.12.1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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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인간의 오관(五官) 중에 입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는 다 아다시피 인간의 행동 중에 가장 기본적 행동은 먹는 일이어서 일게다. 몹쓸 병에 걸렸어도 미음이라도 입 안에 넘길 수 있으면 생명 연장은 되는 셈이다. 오죽하면 한자의 밥 식(食)에서조차 사람 인(人) 자에 양(良)자가 합해졌을까. 그만큼 먹는 일은 삶 중에서 가장 좋은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예로부터 민초들이 등 따시고 배부른 일에 전력을 다하는 임금을 성군이라고 일컬었다. 요즘도 정치의 근본을 굳이 꼽으라고 한다면 민생 안정이 아니던가.

평소 밥식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하루 세 끼 밥 먹기를 좋아한다. 아무리 바빠도 라면이나 빵으로 끼니를 이은 적이 별반 없을 정도다. 내가 무슨 미식가는 아니지만 이 때문인지 동네에 맛 집이 생겼다고 하면 꼭 찾곤 한다.

초겨울 볕이 따사로운 주말 어느 날,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동네에서 다소 먼 거리에 위치한 식당을 찾았다. 마침 가게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초로의 아주머니 한 분 혼자서 서빙을 위하여 분주히 식당 안을 오간다.

자리를 잡고 앉자 벽 한 면에 큼지막하게 쓰인 식당 메뉴판이 눈길을 끌었다. 주로 해물 찜과 탕을 전문으로 하는 이 식당은 개업 한지 얼마 안 되는 식당이다. 무엇보다 음식 값이 매우 저렴한 게 인상적이었다. 메뉴판에서 음식 값을 확인한 나는 가격이 여느 식당보다 거의 절반 수준이니 맛 또한 허술하겠구나 싶어 내심 이곳을 찾게 된 것을 후회 할 때였다. 때마침 옆 좌석에 음식이 나왔다. 매콤한 양념 냄새와 구수한 해물 냄새가 어우러진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해물 찜은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을 돋우었다. 해물 찜 전문 식당에 가보면 많은 량의 콩나물이 접시를 거지반 차지하는데 이 집 음식은 달랐다. 전복, 낙지, 새우, 홍합, 오징어 등 온갖 해물들이 큰 접시 위에 깔린 콩나물 량 보다 훨씬 많다.

옆 손님의 음식을 곁눈질 해 본 후 마음이 놓인 나 역시 해물 찜을 주문하였다. 음식을 주문 한 후 무심코 건너다본 주방엔 앳된 청년이 요리에 열중 하고 있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노라니 불 앞에서 큰 후라이 팬을 들고 열심히 요리하는 청년 모습이 왠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아름다움은 외적인 미가 아닌 내적인 미여서 더욱 나를 매료 시켰다. 남자도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땀 흘려 일하는 모습에서 여성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음식을 요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젊은이에게서 진정한 멋을 발견한 것도 그러려니와 무엇보다 나를 감동 시키는 것은 힘든 일을 마다않고 소매를 걷어부친 청년의 낙동(樂動) 정신이다.

그날 입안에서 씹히는 콩나물의 아삭한 식감과 어울린 온갖 해산물로 요리된 해물 찜 한 접시를 다 비운 우리 가족은 온 몸에 기운이 절로 솟는 듯하였다.

요즘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 더구나 젊은이들의 3D기피 현상 때문인지 청년 실업난은 날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그 날 이후 이곳에 단골이 된 나에게 식당 아주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다. 주방장은 자신의 아들로서 대학 졸업 후 지난날 여러 곳에 이력서를 제출했으나 취업난의 좁디좁은 문은 좀체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 젊은이는 생각 끝에 식당을 운영하기로 결심, 해물 찜 만드는 요리법을 배우기 위하여 꽤 오랜 시간 식당 주방에서 그릇을 닦고 주방장 잔심부름을 도왔단다. 그리곤 열심히 주방 일을 배워 오늘날 어엿한 식당 사장이자 주방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젊은이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하여 주방의 보조 일손을 두지 않고 그 힘든 일을 거의 혼자 다 해낸단다. 이는 철두철미한 직업의식에 의해서일 것이다. 이젠 직업에 귀천이 없어진 세상이다.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에 전력을 다할 때 삶도 아름답게 완성 된다. 젊은이의 자작자활(自作子活) 하는 모습에서 철학자 니체의 “ 직업은 인생의 등뼈와 같다”는 말을 전적 공감해 본다. 206개의 뼈로 이루어진 인체에서 등뼈야 말로 가장 중요한 뼈 아니던가. 니체의 말처럼 우리 몸의 척추나 다름없을 만큼 소중한 게 직업이다. 자신의 직업에 철저한 직업의식을 지니고 땀흘려 일하는 청년의 근면성에서 밝은 미래를 점쳐본다. 하여 식당일이 한가한 틈을 타 청년과 잠깐 대화를 나눴다. 이에 청년 왈, “ 제가 요리한 음식들을 손님들이 맛있게 드시고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맛있다, 잘 먹었다.’ 라고 말 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이럴 때 제 눈엔 손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보입니다.” 라고 말한다. 청년의 그 모습에서 남다른 장인 정신마저 엿보인다. 청년은 음식만 요리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 앞에 무한히 펼쳐진 거친 인생 밭을 옥토로 가꾸는 중이었다. 이런 젊은이에게서,“내가 독일 청년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세 마디 뿐이다. 독일 청년들이여, 일하여라, 열심히 일하여라. 끝까지 일하여라.” 라는 독일 통일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한 비스마르크의 언명을 문득 떠올려본다. 내가 만난 젊은이야말로 비스마르크의 이 외침에 충실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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