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대표 여성 작가 ‘마리로랑생展’
프랑스를 대표 여성 작가 ‘마리로랑생展’
  • 김지만 기자
  • 승인 2017.12.0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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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를 그린 화가, 샤넬을 그린 여자

[독서신문] 예술의전당(사장 고학찬)은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KBS와 공동으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 마리 로랑생(1883-1956)의 특별전인 <마리 로랑생展-색채의 황홀>을 12월 9일부터 내년 3월 11일까지 개최한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마크 샤갈과 더불어 색채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해낸 작가로 손꼽히며 황홀한 색채로 파리의 여성들을 화폭에 담아냈던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 화가 마리 로랑생(1883-1956)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국내 최초로 만나보는 이번 전시는 프랑스 천재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명시 <미라보 다리>의 주인공인 마리 로랑생을 소개하는 회고전으로 그녀의 70여 점의 유화, 석판화, 수채화, 사진과 일러스트 등 총 160여 점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연극배우 박정자의 깊이 있는 목소리로 작품이 소개될 예정이며, 전시 기간 관람객 참여형 전시로 박정자의 ‘마리로랑생 낭독콘서트’ 등 다채로운 부대행사도 마련된다.

프랑스 천재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의 주인공, 마리로랑생

자화상_목판에유채_1905

마리 로랑생은 1·2차 세계대전의 풍랑 속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예술가였다. 여성 화가가 드물던 시대에 미술교육기관인 아카데미 앙베르에서 입체파의 창시자로 불리는 ‘조르주 브라크’에게 재능을 인정받으며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파블로 피카소의 작업실이자 전 세계에서 파리로 몰려든 젊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이기도 했던 세탁선(洗濯船: Bateau-Lavoir)을 드나들며 기욤 아폴리네르, 막스 자코브, 앙리 루소 등과 어울리며 본격적으로 작품 세계를 일궈가며 '입체파의 소녀' '몽마르트의 뮤즈'로 불리게 된다.

입체파와 야수파의 경향성을 작품에 두드러지게 드러내며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활약하던 마리 로랑생은 피카소의 소개로 모더니즘의 선구자이자 시인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열애에 빠진다. 그러나 두 사람의 열애는 엉뚱하게도 1911년 벌어진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도난 사건에 기욤 아폴리네르가 연루 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1912년 아폴리네르는 실연의 아픔을 담아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명시가 된 <미라보다리>를 발표한다. 이후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독일인 남작과의 결혼생활에 실패한 마리 로랑생은 색채에 대한 섬세하고 미묘한 사용과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통해 그 어떤 예술가와도 다른 자신만의 화풍을 개척해 나가기 시작한다.

1920년대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초상화가로서 명성을 떨치며 여성 예술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한다. 이에 대해 전남대학교 미술사학과 정금희 교수는 “마리 로랑생은 윤곽선을 없앤 1차원적 평면성과 부드럽게 녹아드는 듯한 파스텔 색채만으로 평안함을 주는 형태를 완성했다”며 “이는 그림을 통해 세상의 고통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려 했던 작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황홀한 색채로 세상을 껴안는 화가

<마리 로랑생-색채의 황홀> 전시는 마리 로랑생이 20대 무명작가이던 시절부터 대가로서 73세의 나이로 죽기 직전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시절까지, 전 시기의 작품을 작가의 삶의 궤적에 따라 추적해가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파블로피카소_캔버스에유채_1908

마리 로랑생과 관련된 사진 19점을 소개하는 도입부를 지나 1부 '청춘시대' 섹션에서는 마리 로랑생이 화가 브라크와 함께 파리의 아카데미 앙베르에 다녔던 시절 그렸던 풍경화와 정물화, 자신의 초상화와 피카소의 초상화 등이 소개된다. 2부 '열애시대'에서는 입체파와 야수파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뚜렷이 나타나면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이 드러나기 시작한 작품들이 공개된다. 3부 '망명시대'는 아폴리네르와 헤어진 뒤 급하게 독일인 남작과 결혼하지만, 신혼생활이 시작되기도 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스페인으로 망명 생활을 떠나게 된 시기이다. 이 시기 작가가 느낀 고통과 비애, 외로움 등을 표현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더욱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들이 선보인다. 4부 '열정의시대'에서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인 남편과 이혼한 뒤 마음의 고향이었던 프랑스 파리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유럽은 물론 미국에까지 알리게 된 시기의 유화 작품들을 소개한다. 특히 4부에서는 1924년 마리 로랑생이 의상과 무대디자인을 담당해 큰 성공을 거둔 발레 '암사슴들'의 에칭 시리즈도 살펴볼 수 있다. 제5부 ‘콜라보레이션’ 섹션에서는 북 일러스트 작가로도 활동했던 작가의 성취를 살펴볼 수 있는 38점의 수채화와 일러스트 작품들이 전시된다.

작가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대표 실존주의 작가 앙드레 지드가 쓴 '사랑의 시도'를 비롯해 오페라로 더 잘 알려진 알렉산더 뒤마의 '춘희',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 등의 북 커버와 책 안의 일러스트를 담당했다.

이 밖에서도 이번 전시에는 마리 로랑생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 아폴리네르의 시집 '알코올'을 비롯해 마리 로랑생이 1942년 출간한 시집 겸 수필집 '밤의 수첩' 등이 전시된다.

또 시를 직접 필사해보고 시 낭송을 감상해보는 특별한 코너도 마련되어 직접 체험하는 전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드라마틱했던 마리 로랑생의 색채 가득한 삶

마리 로랑생(1883~1956)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이자 시인이며 북 일러스트 작가이기도 했다. 세계 미술사에서 마크 샤갈과 더불어 색채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해낸 작가로 손꼽히는 그녀는 무엇보다 색채에 대한 자신만의 매혹적인 감각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황홀한 핑크와 옅은 블루, 청록색, 우수가 감도는 회색 등은 마리 로랑생의 작품을 보면 누구나 한 번에 알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세명의젊은여인들_캔버스에유채_1953

마리 로랑생은 작품에 대해 지적인 관념을 대입하는 것을 격렬하게 거부했다. 그녀는 오롯이 본능과 직관에 따라 그림을 그는 화가였다. 아름답고 젊은 여성들과 형체가 모호한 동물들이 풀밭에 들어찬 몽환적인 세계에 대한 자신의 시선을 끊임없이 담아냈다.

만약 그녀가 자신만의 환상과 직관을 갖지 못했다면, 마리 로랑생은 입체파나 다다이즘의 추종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파블로 피카소, 조지스 블라크, 앙리 루소 등 야수파와 큐비즘을 대표하는 작가들과 교류하며 영향을 받으면서도 이들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해낸 여성 화가라는 점에서 마리 로랑생이 서양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적지 않다. 마리 로랑생은 남성의 관점에서 여성을 바라봤던 서양미술사의 흐름에서 탈피해 여자의 눈으로 응시한 그들의 모습과 여성성을 포착해낸 최초의 여성 화가라고도 할 수 있다.

‘벨 에포크’ 시대에 만난 운명의 연인, 아폴리네르

마리 로랑생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이었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평화와 번영이 계속되며 전 세계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던 파리의 시기를 지칭하는 '벨 에포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예술가의 예술가'라 불리기도 한다.

우리말로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을 담은 이 시기와 1·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마리 로랑생은 피카소와 아폴리네르는 물론 장 콕토, 앙드레 지드, 마리아 릴케, 코코 샤넬, 헬레나 루빈스타인, 서머셋 몸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예술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샤를델마스부인의초상_캔버스에유채_1938

그 시작은 피카소가 가난한 무명작가이던 시절, 몽마르트르의 허름한 건물 바토 라부아르(세탁선)에서부터 시작됐다. 화가 브라크의 소개로 젊은 작가들의 아지트이던 이곳을 드나들던 스무 살의 마리 로랑생은 아름답고 쾌활하며 묘한 매력을 발산해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가 됐다.

피카소의 소개로 훗날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불리게 되는 기욤 아폴리네르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들은 모두 사생아였고 이는 둘 사이의 묘한 동질감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마리와 사랑에 빠진 아폴리네르는 “마리 로랑생의 예술은 우리 시대의 명예이다.”라는 헌사를 바치며 마리의 작품 세계를 알리는 데 노력했다.

그러나 5년간의 짧은 사랑은 기욤 아폴리네르가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도난 사건의 주범으로 몰리게 되면서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어머니의 급작스러운 죽음 속에서 마리 로랑생은 독일 귀족 출신의 화가로 연하였던 오토 폰 바예첸 남작과 결혼을 감행한다.

1912년 '파리의 야회'지(誌) 2월호에 기욤 아폴리네르는 '미라보 다리'를 발표하며 실연의 아픔과 상실감을 드러냈는데 이 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가 되었고, 5년간 뜨겁게 사랑을 불태웠던 마리 로랑생과의 결별을 아쉬워하는 시인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 시는 세계적인 샹송 가수인 이베뜨 지로(Yvette Giraud)와 음유시인 레오 페레(leo Ferre) 등이 불러 불후의 명곡이 됐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노래로 불린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내린다.
내 마음 깊이 아로새기리
기쁨은 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미라보다리' 중에서)

마리 로랑생 또한 아폴리네르가 1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얻은 부상으로 사망하자 그를 그리며 시를 쓴다. '밤의 수첩'에 수록된 이 시는 한국에는 '잊혀진 여인'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원제는 '진정제'이다.

지리 하다고 하기보다 슬퍼요
슬프다기 보다
불행해요
불행하기보다
병들었어요.
병들었다기보다
버림받았어요.
버림받았다기 보다
나홀로.
나 홀로라기 보다
쫓겨났어요.
쫓겨났다기 보다
죽어 있어요.
죽었다기 보다
잊혀졌어요.

마리 로랑생이 헤어진 연인 기욤 아폴리네르를 그리며 이 같은 시를 썼을 때 그녀는 1차 세계대전을 피해 독일인 남편 오토와 스페인으로 유랑하던 시절이었다.

결혼 후 불과 1개월 만에 터진 1차 세계대전은 독일인 남편과 프랑스인 부인의 신혼생활에는 재앙과도 같았다. 독일과 프랑스 어디에도 돌아갈 수 없었던 마리 부부는 스페인을 도피처 삼아 부유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여기에 남편 오토의 알코올 중독과 방탕한 생활은 마리의 정신 상태를 극한으로 내몬다. 이때 그녀를 구원한 것은 오로지 그림과 문학이었다. 남편 오토와의 이혼 이후 1920년대 장 콕토를 비롯한 프랑스 예술가들의 탄원을 통해 프랑스 국적을 회복하고 파리로 되돌아올 수 있었던 마리 로랑생은 비로소 자신의 예술 세계를 꽃피우게 된다.

“나를 열광시키는 것은 오직 그림이며,
그림만이 영원히 나를 괴롭히는 진정한 가치이다“

(왼쪽부터) 자화상_캔버스에유채_1924, 키스_캔버스에유채_1927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10년간 그녀는 예술 활동에 집중했다. 명사들의 초상화 주문이 끊이지 않았고 의상과 무대 디자인은 물론 도서와 잡지 표지에 이르기까지 그녀를 필요로 하는 이들은 넘쳐났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악화된 건강과 사회적인 고립으로 인해 마리 로랑생의 작품은 정형화되기 시작한다.

1950년대 그녀의 작품은 완전히 잊혀지지는 않았으나 지난 시대의 유물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 작가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렸고 죽기 며칠 전까지 “내게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더 있었더라면!”이라고 탄식할 정도로 예술 혼을 불태웠던 위대한 예술가였다.

1956년 6월 8일 일요일 밤, 심장 마비로 자택에서 숨을 거둔 마리 로랑생은 오스카 와일드와 쇼팽 등이 잠든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Pere Lachaise Cemetery)에 안장된다. 한 손에는 흰 색 장미를 다른 한 손에는 운명적 사랑을 나눴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에게 받은 편지 다발을 든 채였다. <사진 및 자료제공=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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