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단발머리 소녀는 다 어디 갔나?
[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단발머리 소녀는 다 어디 갔나?
  • 독서신문
  • 승인 2017.10.13 15: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나의 학창 시절엔 까만색 교복, 빳빳한 흰 컬러, 윤기 흐르는 단발머리가 여학생들의 표상이었다. 그 때문인지 입속으로 ‘여학생!’, 하고 가만히 부르기만 하여도 청순하고 순연한 소녀의 애잔한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어디 이뿐인가.

당시 청소년들은 배움에 대한 갈망으로 길을 가면서도 단어장을 외우고 어른을 공경할 줄 알며 선생님을 존경하고, 친구에 대한 의와 부모님에 대한 효를 지키는 일을 당연히 사람의 도리로 여겼다. 이런 성정의 소년, 소녀들이 성장하여 오늘날 가정을 이루어 남편, 아버지, 아내, 어머니는 물론 또한 사회의 어엿한 일원이 된 것이다.

요즘은 어떤가. 집안에서 어른이 사라졌다. 어른이 수저를 들어야 식사를 했던 예전과 달리  현대인들은 식탁 예절을 지킬 만큼 한가롭지 못하다. 학교 시간 지키느라 아이들이 먼저 밥한 술 뜨고 부모들은 출근 시간에 쫓겨 아침밥도 뜨는 둥 마는 둥 하는 실정이다. 이렇게 맞벌이와 삶에 쫓기는 형국이니 자녀들 밥상머리 교육의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가정교육의 소홀한 탓인지 요즘 초등학생들조차 심상치가 않다. 고학년만 돼도 어른 흉내를 내곤 한다. 입술에 붉은색 립스틱을 바르는 것은 물론 여중생, 여고생들은 일반 성인 뺨칠 정도의 진한 화장까지 하고 다녀 교복만 벗으면 신분 구별이 어려울 정도이다.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게 분명하다. 현대는 외모지상주의 시대 아니던가. 하지만 아직도 나의 뇌리엔 솜털이 보송보송한 앳된 얼굴의 수줍은 소녀 모습이 각인돼 있는 것은 어인 일일까?

학생들의 화장은 세태의 반영이라고 치자. 문제는 그들의 심성이 점점 잔인하고 포악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녕 ‘학교는 인간을 못 만든다(School never makes a man)’라는 명언이 적중하고 있단 말인가. 요즘 청소년 범죄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것은 이 명언을 방증하고도 남음 아닌가. 부산 여중생 폭력 사건, 인천 초등생 살해 사건 등 가해자는 어른이 아닌 한창 꿈 많은 소녀들이 저질렀다.

오늘날 한창 미래에 대한 부푼 꿈을 가꾸고 호연지기를 기를 청소년들이 이렇듯 심성이 거칠어지고 범죄에 노출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가정은 인간 최초의 학교가 아니던가, 오로지 지식 교육, 기술 습득 교육에만 치우쳐 교육의 근본 목표인 인성 교육엔 무관심 하지 않았었나 하는 반성을 해본다.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나 사랑을 가르치기에 앞서 학교 입시 교육에 의한 타인과 경쟁하는 일에 골몰했던 게 마음에 걸린다. 이런 사회적 현실에서는 아이들의 전인형성(全人形成)이 불가능하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만으론 전인 교육을 이루기 어렵다.

영어에 능란하고 수학 문제 척척 풀게 가르쳤다고 교육이 전부가 아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따뜻한 가슴을 지니는 일이다.

십 수 년 전 교육사업을 할 때 일이다. 한창 아이들을 상대로 수업을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삐약!’ 거리는 병아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냐고 아이들에게 묻자 한 아이가 가방에서 샛노란 털을 지닌 병아리 한 마리를 꺼내 조심스레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면서, “ 선생님! 학원 오는 길에 웅크리고 있는 병아리를 발견했는데 자세히 보니 다리 한쪽이 부러져 움직이지 못하고 있어 불쌍해 갖고 왔어요”라고 한다.
그 당시 상자에 병아리를 담아와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병아리를 팔고 있는 상인을 목격한 적 있다.

이 때 아이들은 그 병아리를 사서 마치 장난감처럼 학교 운동장에서 갖고 놀고 심지어는 계단에서 병아리를 떨어뜨리는 장난을 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아마 이 병아리도 그런 아이들의 짓궂은 놀이로 희생된 듯 하였다.

비록 병아리지만 엄연히 생명체이다. 생명체에 위해(危害)를 가하는 일은 자칫 훗날 인명 경시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이번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만 하여도 주도자 및 공범자도 평범한 학생 아니었던가. 단. 그들이 일찍이 온기 있는 인간적인 가슴을 지녔더라면 그런 흉악한 살인을 어찌 저지를 수 있었으랴.

‘1등 해라, 좋은 대학 가야 한다. 출세해야 한다.’ 이들을 몰아붙인 게 우리들 아니었나 싶어서이다. 그러기에 앞서 정(情)과 지(知), 의(義)의 전인 교육을 우선시 했어야 했다. 이는 다름아닌 자식들의 교육을 학교에만 맡긴 채 가정교육은 등한시 한 결과이기도 하다.

가정은 인간의 성격 형성의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오죽하면 페스탈로치는 “ 가정은 도덕의 학교이다” 라고 하였을까. 그의 언술이 아니어도 가정이야말로 자녀들에게 최초의 학교라는 사실을 부모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