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세 여자』 조선희 “그녀들과 함께 백 년 넘게 산 기분”
[작가의 말] 『세 여자』 조선희 “그녀들과 함께 백 년 넘게 산 기분”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7.09.29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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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은 소설집 등 책의 맨 뒤 또는 맨 앞에 실리는 ‘작가의 말’ 또는 ‘책머리에’를 정리해 싣는다. ‘작가의 말’이나 ‘책머리에’는 작가가 글을 쓰게 된 동기나 배경 또는 소회를 담고 있어 독자들에겐 작품을 이해하거나 작가 내면에 다가가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에 독서신문은 ‘작가의 말’이나 ‘책머리에’를 본래 의미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발췌 또는 정리해 싣는다. 해외 작가의 경우 ‘옮긴이의 말’로 가름할 수도 있다. <편집자 주>

조선희 작가

[독서신문] 내가 이 소설을 시작한 것이 2005년이었다. 처음 소설의 실마리가 된 것은 허정숙의 발견이었다. 냉전시대를 통과하면서 우리 세대에 독립운동은 김구뿐이었던 것처럼 신여성은 나혜석뿐이었는데 허정숙을 처음 알았을 때 놀라웠다. 허정숙에 흥미를 갖고 들여다보니 또 다른 매력적인 신여성 군상이 눈에 들어왔고 그들 주변에 공산주의운동에 목숨을 걸었던 비운의 남자들이 보였다.

하지만 소설 쓰기는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중략) 온 우주가 나서서 방해하는 듯했던 집필의 과정이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늘어지는 동안 세 여자의 인생이 내 머리와 가슴속에서 사과처럼 천천히 익어갔다. 그사이 내가 40대에서 50대가 되었고, 이번에 세 여자의 말년을 다룰 때는 예전에 비해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는 걸 느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세 여자를 비롯해 이름 석 자로 나오는 사람은 모두 실존인물이다. 등장인물들에 관한 역사기록을 기본으로 했고 그 사이사이를 상상력으로 메웠다. 역사기록에 반하는 상상력은 자제했고 ‘소설’이 ‘역사’를 배반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소설은 세 여자와 그들 남자들의 인생과 함께 1920년대에서 1950년대에 걸쳐 한국 공산주의운동의 탄생부터 소멸까지를 다뤘다. (중략) 세 여자는 20대를 함께 보낸 후 유라시아 대륙의 다른 장소로 흩어졌지만 늘 우리 근대사의 극명한 현장 한가운데 있었다. 가령, 주세죽이 스탈린 치하에서 한인 강제이주의 참담한 현장에 던져졌을 때 허정숙은 연안에서 모택동에게 혁명전략을 배우고 있었고 고명자는 경성에서 친일잡지의 기자 노릇을 했다. 해방공간에 허정숙과 고명자는 38선의 북쪽과 남쪽에 있었고, 허정숙은 김일성의 측근이었고, 고명자는 여운형 옆에 있었다. (중략)

소설을 시작하던 12년 전에 비해 한국 사회도 많이 달라졌다. 알파고,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한 것은 한국 사회가 해방공간, 한국전쟁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이다. (중략) 이 소설을 쓰고 나니 해방공간에 못 볼 꼴 다 보고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듯하다. 세 여자가 태어난 것이 20세기의 입구였는데 나는 그녀들과 함께 백 년 넘게 산 기분이다.

소설을 쓰는 동안 한 시대를 탐사하느라 즐거웠지만 비통한 일들에 많이 울었다. 그분들의 삶을, 그분들 세대의 삶을, 그 시대의 역사를 위로하며 보내드린다. / 정리=이정윤 기자

『세 여자 1, 2』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사 펴냄 | 1권 400쪽, 2권 380쪽 | 각권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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