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속의 사랑 사랑속의 이집트②
이집트속의 사랑 사랑속의 이집트②
  • 신금자
  • 승인 2007.12.28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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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
▲ 신금자[수필가·본지 편집위원]     ©독서신문
안토니우스와 악티움 해전

 격류의 위험에 휩쓸리면 헤어나기 어렵다고 했던가. 허겁지겁 로마에서 이집트로 돌아온 클레오파트라는 남편이자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14세를 죽인 뒤 3살짜리 아들인 시저리온과 결혼을 한다. 이는 이집트가 여자와 남자를 내세워 통치를 하되, 순수혈통을 잇기 위한 결혼 풍습이다.
 
 클레오파트라가 한 정식 결혼은 안토니우스뿐, 모두가 왕위를 잇기 위해 서열대로 맺어진 셈이다. 그러니 아들을 위해 험준한 산골짜기를 오를 수 있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정치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서 로마의 후계구도에도 눈을 떼지 않았다. 생전에 시저가 친자인 시저리온 대신 양자인 옥타비아누스로 승계해 놓았다는 사실은 뭘 의미하는가? 급류에 휩쓸려 비명횡사할 순 없잖은가.
 
  마침내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의 미래를 안토니우스에게 걸어보기로 한다. 클레오파트라, 그녀는 시저를 모시고 있을 때부터 안토니우스가 드러내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한 여인이 아니던가. 당연히 사랑과 정치적 연대가 따랐다. 진작부터 그녀를 동경하던 그에게서 시저리온 즉, 이집트의 든든한 바람막이가 필요했으리라.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의 지원으로 아르메니아 원정에서 승리하고 클레오파트라에게 정복지인 나라들을 뚝뚝 떼 결혼선물로 주었다. 그 와의 사이에서 세 아이를 더 낳았고 로마의 부인 옥타비아(옥타비아누스의 누이)와는 이혼했다. 이 때문에 로마인들이 분노했다.
 설상가상으로 안토니우스가 자신의 무덤을 이집트에 만들어달라는 유언장까지 공개되는 바람에 두 진영의 전쟁이 불가피해졌다. 그와 그녀의 사랑은 시꺼멓게 타들고 둘 다 자결하게 한 악티움 해전이다. 그들은 이 전쟁에서 옥타비아누스에게 참담하게 패하고 이집트는 로마로 귀속되었다. 
 
그녀의 꿈과 사랑
 아무렴, 그녀를 옥타비아누스가 로마를 짓밟는 요부 취급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할 이집트가 막막해서 차마 버리지 못한, 자기를 온전히 던져서 이집트를 사야할 정도의 미련퉁이가 아닌가. 최소한 현실적인 외교 감각으로 그녀의 자존감마저 내놓고 로마제국을 이용하여 나라를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만의 전략이 아니랴.

 이집트는 세계 제일의 부자나라였다. 하지만 로마와 비교해서 정치와 군사력 수준은 그야말로 게임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악티움 해전에서 승산이 없자 안토니우스를 버리고 뱃머리를 돌려 도주한 것은 사랑에 대한 배신일 수도 있다. 그러나 크게 보면 그녀는 그 와중에서도 꺼져가는 나라의 희망을 보려 했다.
 그러니 달리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금세 로마의 실세가 된 옥타비아누스와 모종의 연합을 모색하며 나라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지만 그녀에게 되돌아 온 것은 멸시와 조롱이었다. 언감생심 연합이라니, 옥타비아누스는 그녀를 로마 개선환영식에 끌어내 구경꺼리로 삼을 작정이었다. 이를 안 그녀는 마지막 불씨를 살려내지 못하고 힘없이 꺼져갔다. 
 

 급류로부터 벗어나 비교적 평온한 웅덩이에 들어서도 그녀는 계속해서 긴장을 하고 살았다. 이제는 더 이상 넓은 강물에서 느긋하게 표류하고 있는 다른 동물을 부러워하지 않으리라. 다만 그녀는 키를 잡는 기술을 알고 있었다. 입을 다물고 온 신경을 집중시켜 뗏목을 타야하는 사람은 물에 빠진 사람의 비명이나 남을 안쓰럽게 여길 여유가 없다고 하지 않던가. 하여 안토니우스는 전장에서도 클레오파트라를 향한 눈물겨운 사랑을 보여주다 마침내 자결했다. 그렇지만 클레오파트라가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사랑은 이집트가 아니었을까. 그렇다. 그녀는 분출하는 에너지를 나라와 사랑에 쏟았다. 그 분출의 힘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 혹은 규율에서 벗어나 그 제어가 힘들 때 과감하게 자신의 파괴를 초래하는 사랑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이는 결국 그녀가 나라와 사랑을 같은 선상에 놓은 증거가 아니랴. 
 

  로마의 역사가인 ‘플루타르코스’ 는 클레오파트라의 본성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녀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헌신적으로 했다.
   그녀는 사랑할 때 온전한 사랑을 바쳤다.
   그녀는 미워할 때 정열적으로 증오했다.
   그녀는 슬퍼할 때 온 마음을 다해 비탄에 빠졌다.
 
 이런 변호 역시 격정적으로 살다간 그녀 인생의 옹호라면 옹호다. 그 옹호의 앞과 뒤에는 또 다른 진실과 편견 그리고 오해의 시각이 가로놓일 것이다. 역사는 산자의 몫이다. 승자의 몫이기도 하다. 클레오파트라는 사실 미인이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에 밝혀진 사진을 보아 사실인 듯하다. 물론 빼어난 몸매와 화장술이 무기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심성 깊은 곳에서 솟는 맑은 목소리와 타고난 외국어 실력,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외교 전략을 수행하기에 잘 맞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은 필자의 기우일까. 오늘만이라도 그녀 편을 들어주고 싶다.
 

 
 어쨌든, 잘 발달된 물질문명이 주변국끼리의 이해관계로 갈등을 부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을 테고, 이집트도 이웃한 고대 로마 사이 어딘가에서 이런 기류가 감지됐으리라. 그래서 클레오파트라는 독립과 식민의 복잡한 미로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하다갔다. 인류의 역사에서 주인공을 맡은 사람은 많다. 하지만 훌륭한 키잡이는 그리 흔하지 않다. 옛 파라오들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영광을 길이 보전하고자 했던 그녀의 열망이 새삼 그리운 것은 왜일까. 지금도 나일 강과 이집트는 클레오파트라를 기억해내고 있다. 지친 클레오파트라를 영원히 잠재웠던 독사의 교태 또한 지중해로 도도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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